낯설었던 하루

by 나다

낯선 곳에서 감은 눈은 쉽게 떠졌다.

숙소의 공기는 고요했고

내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다.


천천히 옷을 챙겨 입고

전날 밤 여러 번 확인했던 가방을

한번 더 열어봤다.

신분증, 진료표..

이미 다 있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날엔 작은 것도 놓치기 싫었다.


숙소 문을 나서자 찬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걸음 소리가 텅 빈 골목에 또렷하게 울렸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마음은 묵직하게 길어졌다.


병원에 도착했다.

두 번째 방문이었기에 허둥대지 않고 접수를 마쳤다.

'다음에 오면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그 익숙함이 싫었다.


채혈실은 마치 '피 공장' 같았다.

혈관을 찾기 어려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착 착 착..

간호사들의 능숙함에 감탄하는 순간 피가 8통이 뽑혔다.

마치 헌혈한 느낌..


작은 검사들이 이어지고

초음파와 CT만 남았다.

시간에 맞춰 영상의학과 앞에 앉아 기다렸다.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사람,

명단 목록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람,

가족과 함께 와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암 환자구나.'


정말 많았다.

검사를 위해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정말 많은 환자들을 보았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정말 다양한 얼굴들.


'나는 별거 아니구나.'


마지막 CT 촬영이 남았다.

다른 병원에서도 찍어봤지만,

조영제가 들어올 때 느껴지는

그 미묘하게 뜨끈해지는 느낌은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팔에 꽂힌 굵은 주사도 마찬가지.


'아, 내 차례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가벼워졌다.

드디어 오늘 해야 할 일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촬영이 끝났을 때

몸이 툭 하고 힘이 빠졌다.

'이제 집에 가자'


낯선 곳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익숙한 우리 집으로 가자.

우리 아이들을 보러 갈 시간이다.


다음 진료까지 2주.

낯설었던 하루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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