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기다리면서 달라진 점은 없었다.
나는 엄마로서 삶을 살아갔다.
암이라는 말을 듣기 전과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그래. 그냥 관리하면서 살아가는거야. 이참에 건강을 챙기는 것이 좋지.'
'별일 없을꺼야.'
'후.. 열었을때 다르면 어떻하지?'
'림프 전이는 열어봐야 안다던데..'
'아니야, 괜찮을꺼야. 이런 행운이 어딨어.'
'너무 웃기잖아, 점집에서 암이라고 병원가보라니..'
'입원하는 동안 우리 애들은 어떻하지.'
'엄마가 미안해, 아파서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평온한 내 시간과 다르게
내 머리속은 미쳐갔다.
그렇게 첫째의 생일파티를 미리 하는 날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첫째는 계속 물어봤다.
"엄마, 내 생일 언제야? 케이크 있어?"
우리는 날짜를 조금 당겨서
주말에 외가 식구들과 함께
미리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를 주문하고
선물도 고르고
행복해하는 첫째의 얼굴을 보는데
심장이 아렸다.
'엄마가 미안해, 금방 갔다올께.'
초를 꽂고 불을 끄고
"생일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렀다.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 빛이 너무 예뻐서
그 순간만큼은 병원도, 수술도, 암도
모두 머릿속에서 잠시 사라졌다.
케이크를 먹으며
크림이 묻었다고 산타 할아버지가 됐다며
아이들이 깔깔거리자
우리 모두가 웃었다.
그러다 가끔,
가슴 안쪽이 뻐근하게 조여오는 순간이 왔다.
진짜 생일에는
같이 있어주지 못한다는 것.
그날 나는
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을 거라는 것.
아이들을 2주 정도 보지 못할 거라는 것.
그 생각이 전등처럼 깜빡 거렸다.
약속된 날짜가 다가올수록
아이들은 나에게 더 붙었다.
둘째는 하루종일 내게 안겼고,
첫째는 계속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아마 아이들 나름대로 느끼는 게 있었을 것이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도
어른들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안기고 싶어 할 때
나는 기꺼이 안아줬다.
엄마의 부재를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적게 느끼길 바랬다.
조금이라도 내 온기를 많이 남겨두고 싶었다.
'엄마 금방 올게'
'엄마 오래 안 비울께'
'엄마 건강해져서 더 많이 놀아줄 수 있어'
그 말들을 스스로에게도 중얼거렸다.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난 행운아야'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내일 챙겨갈 입원 가방을 꺼냈다.
수술 후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챙기다 보니
가장 큰 캐리어가 금방 가득 찼다.
마지막으로 수술 일정이 적힌 종이를 확인하고
지퍼를 닫았다.
짐을 모두 챙긴 후,
거실 바닥에 가만히 앉았다.
조용한 집.
아이들이 자는 숨소리,
남편의 숨소리.
그 평온함 속에서
그냥 눈물이 났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그 생각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했다.
'그래, 더 미뤄지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젠 나아지는 일만 남았어.'
그렇게 나는
두려움과 안도, 미안함과 결심 사이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수술까지 이틀.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