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기 속도로 가고 있다
어느 날 행정복지센터에서 등기가 왔다
지정된 날짜까지 장애자격을 유지하려면 재판정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안내문서였다
나의 첫째는 3년 전 5살에 조음장애로 장애등록을 했었다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장애등록 후 3년이 되는 시점에 다시 재판정을 받아야 장애자격이 지속된다고 했다
예상했던 일이였지만 막상 그날이 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린 고민이 되었다
재판정심사를 받으려면 병원의 진단서부터 치료기록 등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서류를 내는 것도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겠지만
솔직히 지금 아이의 상태로는 장애 재판정이 가능할까? 싶었다
왜냐면 정말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장애진단을 처음 받을 때 그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병원의 진단서와 아이가 받아온 치료기록들까지 꼼꼼히 제출해야 하며
그런 치료를 6개월 이상 했음에도 아이의 언어 발음이 달라지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어느 부모가 장애등록을 받기 위해 아이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겠나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치료를 했음에도 아이에게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좌절감도 잠시 내가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하며
그제야 아이를 위해 장애등록을 찾아보고 서류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얼마큼 , 어떻게 발달하고 자랄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아이가 커서 세상에 어울려 살아갈 때 부족하고 미숙한 아이에게
장애등록이 작은 보호막, 울타리라도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 장애등록을 신청한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장애등록을 받았고
3년이 지났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다
아이는 단순 발음문제와, 표현언어가 조금 느리니 언어수업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던 나는
몇 개월이 지나도 큰 발전이 없는 느낌이 들자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일단, 장애등록 후 장애진단금으로 받은 금액으로
제일 먼저 아이가 다니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민간 숲유치원으로 옮겼다
그때 당시 코로나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어떠한 활동도 하지 못했고 그것이
내 아이의 발달엔 정말 의미 없는 시간이겠구나 싶어서
하루 오롯이 숲에서만 활동하고 배우는 숲 유치원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성향과 심리까지 잘 아는 선생님들의 케어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 더더욱 믿음이 갔고
오픈되어 있고 넓은 숲에서 형, 누나들과 친구들과 같이 놀이하며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되어
아이에게 큰 발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아주 비싼 원비에도 올인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코로나 시기에 그건 정말 잘한 선택으로 생각된다
아이들은 땅을 밟고 풀냄새를 맡으며 뛰며 몸을 움직이며 발달하고 성장하는 건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센터 수업 또한 늘렸다
일단, 내 아이는 대근육이 뭔가 어설퍼 보였다, 전체적으로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고 뛸 때 자세가 뭔가 팔자걸음의 모습이 나왔기 때문이다
대근육, 소근육, 그리고 구강근육 또한 전체적인 근육을 잘 다루지 못하는 아이의 어려움이 이어진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또 아이는 시지각, 청각적 자극에 많이 취약했다
말 그대로 눈에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광활한 공간의 자극들이 들어오면 그 시각에 온 집중을 빼앗겨 다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청각적 자극 또한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고
어떤 집중도를 요하는 작업을 하다가도 어? 비행기소리다. 어? 무슨 소리지? 하면서 주의력이 무너졌다
그렇게 되니 어떤 대화도 오래가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위주로만 얘길 하니 무언가 상호작용에서도 원활하다는 느낌이 적었다
그렇게 나는 감통수업도 시작하였다
또 놀이를 할 때도 아이는 굉장히 한정적인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느낌으로 오롯이 혼자 즐기는 놀이만 했다
자동차를 매우 좋아하였고, 자동차로만 굴리고 줄 세우며 의미 없는 놀이만 선호했다
그래서 한동안 자폐스펙트럼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놀이가 확장이 안되니 언어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놀이수업도 추가하였다
그렇게 얼마를 진행하다 집 근처 심리운동특수체육센터를 알게 되어
몸의 움직임, 근육의 인지 등을 늘리기 위해 또 추가하였다
주 3회 언어
주 1회 감통
주 1회 놀이
주 1회 특수체육
수업은 점점 늘었고 일주일 매일매일이 아이 위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센터 후엔 놀이터 활동, 독서 활동
어떻게든 느린 부분을 올려주기 위해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처럼
강박 수준으로 노력했다
그때가 아이가 5살 때였고
내 뱃속엔 둘째가 있는 상태였다
정말 그 시기에 나는 첫째를 위해 안 한 게 없는 삶을 살았었다
무언가 이렇게 하면 아이가 빨리 좋아질 거란 생각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를 방관하는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정말 쉬지 않고 아이의 발달에 꽂혀 우리 부부의 온 집중은 오직 아이였다
그렇게 1년 2년
수업을 줄였다 늘렸다
짝수업, 그룹수업, 인지수업 등등
아이가 커갈수록 나이에 맞는 수업들을 고민하며 필요한 부분들을 더 채워주기도 하고
쉬어갈 때엔 쉬기도 하며 아이를 계속 관찰하고 노력했다
둘째가 태어나도 달라지진 않았고 둘째를 안고 센터를 다녔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지만 무엇하나 포기가 안 됐다
어찌 보면 그만큼 첫째 아이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고 또 이 시기에 발달을 못 끌어주면
나중에 후회할 거란 생각에 더더욱 애썼던 거 같다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살아온 거 같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 내가 봐도 아이는 장애 재판정을 못 받을 거 같다
그래서 어찌 보면 포기 아닌 포기를 하기로 했다.
아직 초등학생 1학년치고는 말투가 앳된 느낌이 있지만 안되던 발음들도 되고
혼자 책도 잘 읽으며 받아쓰기도 또래 수준으로 얼추 하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느리고 미숙할지어도 큰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수학연산도 나름 잘 따라가고 있고
또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도 조금 미숙하고 느리지만 자기가 하려는 의욕이 많은 아이라
느려도 자기 속도로 잘 가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 얘기해 주신 게 컸다.
잘 자라주었으니 아주 기뻐야 하는 게 맞는데 또 마냥 좋지만도 않다
장애까진 아니지만 또래보다는 아직 많은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포기를 결정하고 복지센터의 담당자분과의 통화에서 포기의사를 밝혔고
다음날 가서 포기서류를 제출하고 왔다
포기서류를 작성하고 복지카드를 반납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막상 포기하려니
과연 이게 맞을까?
아직 내가 보기에 내 아이는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이 아이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조금의 안전망 없이 울타리 없이 잘 커갈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이 마구 올라왔다
장애등록은 무언가 나에게도 안정감을 주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느리게 커도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해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은 무언가의 안정감에 나도 많이 의지했나 보다
자, 이제 아이가 성장한 만큼 나도 성장할 기회구나,
새로운 시기의 기회라 생각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렇게 이제 내 아이는 장애아동에서 비장애아동이 되었다
3년 만이다.
정말 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이가 이만큼 성장해 주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많은 센터 선생님들은 “어머님이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해주셨지만
나는 내가 잘해서 아이가 좋아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아이는 성장할 아이였고 그 속도가 조금 느린 아이였을 뿐,
가끔은 그때 나의 조급함으로 아이를 더 힘들게 한건 아닌가 싶기도 한다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한 거 같은 미안함도 있고
너무 발달에 치여 다른 경험들을 못 시켜준 건 아닌지 괜한 후회감도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 대해서는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있다.
아이의 발달에 제일 큰 부분은 부모의 관심이라는 점이다
어느 대학병원을 가도, 어느 센터를 가도,
내 아이를 제일 잘 아는 건 부모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확신이 있었다
전부터 그랬었고 아마 앞으로도 나는 그럴 것이다
계속 내 아이를 살펴보고 지켜보고 관찰하여
성인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우리 가족 자체가 아이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 주길,,
그렇게 나도 같이 너와 성장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