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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Nov 29. 2023

신념과 욕망의 갈림길에서

<서울의 봄> & <보통사람>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다. 삶이 죽음을 향한 노정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내 결정이 옳을지, 잘못된 선택은 아닐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신념과 욕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며 사는 것도 우리의 운명이다. 실리를 찾을 것인가, 신념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 이에 많은 이들이 실리를 좇으며 만, 신념을 지키는 자들도 적지 않. 강직한 신념과 굳은 의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들이 부럽다.


폭력의 역사를 돌아보다


영화는 1979년 박정희 시해 사건 이후 전두환 정권과 관련된다. <서울의 봄>은 제5공화국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2. 12 사태, 한밤에 벌어진 대치 상황을 긴박하게 그린 작품이다. <보통 사람>은 1987년 민주주의 탄압과 인권 유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 가장의 고뇌와 아픔을 담은 영화다.


두 작품 모두 폭력을 수단으로 삼은 시절의 이야기다. 나라를 위해 한 팀이 되어야 할 군인들이 권력 쟁탈로 부리를 겨눴던 시절, 경제개발의 미명 아래 인권과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던 시절. 그러나 최근까지도 인권 유린의 그림자가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듯하다. 권력자의 비리를 폭로한 대가로 생명에 위협을 당하고, 가까운 지인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잔재하고 있다.


신념과 실리의 경계선에서


<서울의 봄>에서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은 반란군 전두광(황정민)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이다. 감독은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치 상황을 상세히 그리는데, 이는 미치광이 전두광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다. 관객들 모두 극의 결말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갈등을 긴박하게 그릴 이유가 충분했다. 또한 감독은 반란군과 진압군의 대치를 통해 '탐욕을 향한 광인'과 '신념을 지키는 군인'의 모습을 극화한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온몸을 던져 전투 차량을 세우고 바리케이드를 넘는 등 인간으로서 도리와 사명감을 다하는 인물이다. 반면 전두광은 군인의 사명감을 저버린 인물이다. 그는 나라 발전과 안위를 위한 명분이라며 핏대를 세우지만, 그 모든 것은 권력 쟁취를 향한 탐욕에 불과하다. 학연, 지연으로 구성된 하나회를 조직하며, 군인으로서의 양심과 신념을 버린 부도덕한 인물이다.


필자는 전두광을 보며 최근 방영되고 있는 <고려거란전쟁>의 강조가 떠올랐다. 그는 고려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한 인물로, 반역자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고려군을 이끌다 최후를 맞이하였다. 혼란한 고려를 위해 불사한 일이지만, 반역을 꾀했다는 오명과 죄책감에서 괴로워하며 장수로서의 역할을 다한 인물이다. 두 인물은 '국익을 위한 것이냐, 사익을 위한 것이냐'라는 대의가 다르고,  '반성과 성찰이 따랐느냐'라는 기준에서 차이가 있다.


<보통사람>의 성진을 보자. 동네 궂은 일을 해결하고, 신참 후배를 따뜻하게 챙기는 인간미 넘치는 선배로, 몸이 불편한 아들과 아내를 살갑게 대하는 가장이다. 그러나 안기부 실장 규남(장혁)이 주도한 공작 사건에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규남은 성진의 약점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결국 성진은 국가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태성을 연쇄살인마로 둔갑시키는 일에 앞장선다.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고,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권력에 충성한다. 그러나 규남의 잔인성을 목격한 뒤, 거짓된 충심은 점점 무너진다.


성진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허름한 동네 술집에서 반주나 즐기던 동네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이다. 지난 과거를 영웅담으로 늘어놓을 정도로 허풍을 떠는 인물이지만, 복잡한 가정사를 해결하지 못한 가장이기도 하다. 그는 불순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인물인 동시에 신념과 실리의 경계선에 괴뇌하는 인물이다. 권력의 기승하면 윤택한 삶을 살 것인가, 상식과 신념을 지키며 권력에 대항하는 삶을 살 것인가.


고뇌하는 인간, 그 진솔함에 대하여


<서울의 봄>은 유독 배우들의 흡연씬과 전화씬이 많다. 담배와 전화는 선택의 기로에 놓은 인물의 내적 갈등, 불안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한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해야 할 운명 앞에 혼란스러운 인물들. 수 백명의 부하들을 사지로 이끌까 봐 불안해하는 지도자들의 한숨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감독은 반란군과 진압군의 회유를 통해 노선을 달리하던 기관장의 다양한 군상을 그려낸다. 필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군조직을 이해하기보다, 선택의 기로에서 고뇌하는 인간에 주목하고 싶었다. 누구든 신념과 실리라는 경계선에서 그 혼란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에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는데, 먼저 성진의 아들 민국이다. 성진이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에게 대항해 보라고 하지만, 민국은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나"라고 말한다. 민국은 결국 힘없고 소외된 대한민국의 시민을 상징한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권력자의 횡포에 저항하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소시민을 의미한다.


번째 인물은 자유일보 기자 재진이다. 재진은 성진과 막역하게 지내는 인물로 두 사람 간의 세밀한 감정적 교류가 매우 인상적이다. 현실을 좇는 성진과 신념을 추구하는 재진의 비극적 운명은 작품 감상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재진은 영화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나온다. 기자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며, 직업윤리에 철저히 따르는 모범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성진의 올바른 선택을 믿는다. “너는 누구냐”라는 물음에 “나 보통사람 상식이 통하는 시대에서 살고 싶은 보통사람”이라고 답한 그의 말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은 사회를 살아왔다는  비통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백구이다. 백구는 탐욕의 도구로 희생된 대상이자, 성진의 고뇌에 맞침표를 찍게 만든 존재이다. 백구의 죽음 앞에 이제 앞마당은 누가 지키냐며, 울부짖는 성진을 보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수많은 생명체 중 자기 보존능력이나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도덕적 양심이나 측은지심이 작동하여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재능 아닌가. 필자는 폭력의 시대가 끝이 보이지 않 슬프다. 어느새 절제의 버튼이 멈춘 듯, 현실에서 행되고 있는 만행을 지켜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열받아서 때리고, 참지 못해 죽이는, 그저 타인을 충동 도구로 이용하는 인간의 모습에 답답하다. 


가족을 잃은 성진의 처절한 몸부림,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라는 이태신의 마지막 대사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이상 권력에 희생되는 들이 없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 해결되지 않을 숙제가 될까 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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