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트워크는 예술 시장의 단골 소재이다. <디스커넥트(Disconnect)>, <국민사형투표> 등에서도 네트워크 양면성을 다루어 인기를 끈 바 있다.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Socialphobia)>도 SNS의 그림자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 중 하나이다.상영 당시 작품성을 인정받아 40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24회 부일영화상 신인 감독상, 신인 남자 연기상 등을 수상하였다. 미생(tvn), <한산: 용의 출현>에서 활약한 변요한, <독전 1>과 <올빼미>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준 류준열, 최근 <나 혼자 산다>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주승의 초기 작품이다.
왜곡과 과장으로 일그러진 공포사회
영화는 악플러 레나(하윤경)가 네티즌들의 현피에 대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인터넷 DJ 양게, 경찰지망생 지웅과 용민 등이 탈영병 자살과 관련해 사과를 받겠다며 아파트로 몰려온다. 그러나 레나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집을 방문한 남성들은 경찰로부터 의심을 받는다.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경찰 시험에 불리하게 적용될까 봐, 그녀의 죽음에 새로운 의혹을 제기한다.
경찰 지망생인 지웅은 레나의 글에 댓글을 남기게 되면서 현피에 합류한다. 지웅이 용민의 말에 쉽게 동조한 이유는 뭘까.‘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마녀라 생각하는데, 나 하나쯤은 어떨까'하는 군중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익명성은 도덕, 양심, 법적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글로 상대방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들은 책임감이나 죄책감유 외면하며, 이러한 언행이 불명예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예측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의 불행을 이용한다.
일부 사람들은 SNS를 도구로 삼아 내면의 욕망을 채운다.이를 설명할 가장 적절한 인물을 찾는다면, 바로 BJ 양게(류준열)이다. 그는 인터넷 BJ로 일하면서 온갖 자극적인 영상과 사건을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자신의 본모습을 소외시킨 채 왜곡과 과장의 방식으로 자아를 완성한다. 갈등의 중심인물이면서도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인양 스스로를 포장한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컴퓨터 사장은 미해결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 블로거로 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는 레나를 관음의 대상으로 여기며, 욕망을 위해 타인의 관심을 이용하는 인물이다.
그림자 투사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해자로 그려진 레나이다. 그녀는 타인에게 비판과 독설을 내뿜는 악플러이다. SNS뿐 아니라 학교생활에서도 이러한 소통 부재가 문제로 남는다. 창작 모임에서 활동하는 레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자신의 원고를 타인과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 완성된 원고도 없이 타인의 작품에 흠집을 내거나, 교수의 충고에 복수를 감행하는 등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녀는 악플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며, 비판에 능수능란한 인물이다. 반면 누군가 자신의 결점을 지적할 때면 심한 분노를 느낀다. 아마도 창작에 대한 고통이 억압된 상태, 즉 인식하지 못한 열등감이 무의식 전반에 잔재한 듯 보인다.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지 못해, 부정적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우이다. 결국 레나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했던 열등한 부분을 되찾아 오지 못한 채 거짓 인생을 살아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려 노력한다. 특채 채용 기회를 잡기 위해서 허상의 범인을 만들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간다. 댓글을 삭제하지 못한 지웅을 첫 번째 용의자로, 호텔 사장 장세민을 두 번째로, 용민을 최종 용의자로 낙인찍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스스로 다른 용의자를 찾아 나서는 거다. 또 그 과정에서 왜곡된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거짓과 왜곡이 진실이 되고, 그들의 심판이 곧 법이 되는 사회. 그곳이 바로 SNS라는 공포 사회이다.
과연 레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소통의 과부하로 중병을 앓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레나 역시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에게 펜을 휘둘러 상처를 입힌 가해자이기도 하다. 용민 역시 레나의 악플에 괴로워했던 피해자인 동시에 지웅에게 올가미를 씌운 가해자이다.
나는 이부영 씨의「분석심리학 탐구 1, 그림자」라는 저서에서 ‘거룩한 분노’라는 개념에 주목한 적 있다. 그는 ‘인간이 악에 대하여 갖는, 마음의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분노는 당연히 개인적인, 또는 집단적인 그림자의 투사체험과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개인의 ‘그림자 투사’는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타인에게 미루어 정의하는 방어적 기제로 작용하지만, ‘거룩한 분노’는 ‘그림자 투사에 대한 반성적 작용 후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회를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거룩한 분노’이지, ‘그림자 투사’가 아니다.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ocialphobia)>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도마 위에 올린 작품이다. 거시적인 주제를 포인트로 삼아, 개인의 행동과 심리를 깨닫는 데 의미가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옛 속담이 떠올랐다. 펜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오히려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