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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덕골 이선생 Dec 20. 2023

사과할 기회를 드립니다

<소년들> VS <재심>


[ 출처: 네이버 ]
그날 그곳에 진실은 없었다


<소년들>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1999)'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동네 3인방 소년들이 용의자로 수감되면서, 엎치락 덮치락 사건의 진실을 파해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느 날 베테랑 형사 준철(설경구)은 진범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그러나 우성(유준상)과의 갈등으로, 모든 일이 허사가 . 16년 후, 준철은 미숙(진경) 부탁으로 다시 진범을 찾아 나선다.


<소년들>은 실화를 배경으로 했지만, 주인공 준철은 허구적 인물로 보인다. 당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사건(2000년)'의 변론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가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감독은 기존 인물이 부담이 됐는지, 베테랑 형사 준철을 등장시킨다. 경찰 수사의 안일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의의 상징인 준철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또한 감독은 여성 변호사를 내세우면서, <재심>과의 연관 고리를 잘라낸다. 준철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으로, 사건 해결에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릭터이다. 반면, 우성(유준상)은 진실을 향한 목마름보다 자신의 탐욕에 집중하는 자이다. 그는 권력에 눈먼 자로,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에 급급한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소년들>에 등장하는 빌런들은 존재감이 없다. 실제 범인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거나, 자신의 죄를 실토하는 인물들이었다. 승진에 눈먼 형사들은 진실이 밝혀질까 노심초사하고, 경찰에 협력했던 검사(조진웅)는 진범의 말 한마디에 망신을 당한다. 나는 조커 같은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데 더 위기감이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 정의, 신념, 도리를 저버린 채, 이익만을 좇는 인물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거짓과 폭력으로 얽룩진 사회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악의 평범성, 즉 평범한 악인들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준철의 가족이다. 부인과 딸은 준철의 든든한 후원자로, 그의 행위를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하는 존재이다. 가족 간의 신뢰는 세상의 부조리와 맞설 수 있는 힘이 된다. 피해자 미숙은 어떤가. 그녀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죽은 할머니의 가족으로, 소년들을 끝까지 보살핀다. 이와 같이 <소년들>은 한 영웅의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범인을 쫓고 증언대에 세우기까지,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노력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정의를 위한 한 사람의 용기는 연대의 포문을 여는 시발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 출처: 네이버 ]
강압 수사와 거짓 자백


<재심>은 실화인 ‘2000년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사건’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14년 전, 현우는 살인사건 최초 신고자였다. 형사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현우를 범인으로 지목한 뒤 구타와 협박 등으로 수사를 이어간다. 현우(강하늘)는 강압수사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한 뒤 10년간 옥살이를 했고, 무명 변호사 준영(정우)은 유명세를 얻기 위해 그의 변론을 맡는다.


감독은 준영의 고뇌를 작품 전반에 녹여냈다. 공익성을 중시할 것이냐, 사익을 따를 것이냐. 준영은 영화 초반에 사적 욕구를 채우고자 재판을 이용하는 남자였다. 공익성보다 경제성을 중시하던 그가 무료 상담에 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명 쓴 살인범을 구하는 일이 회사 이미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재심 변론은 법인 회사에 정식 채용되기 위한 처세에 불과했다.


현우는 준영을 믿지 않는다.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없었으니, 준영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만든 것이 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우는 준영의 적극적인 태도에 마음이 열리고, 일용직 노동으로 번 돈을 준영에게 내민다. 준영은 그의 진심에 감동하며, 변론의 목적을 사익이 아닌 공익성으로 전환한다. 부와 명예를 위해 맡은 사건이지만, 현우의 진솔함에 반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질(돈)보다도 현우의 진실(무죄)을 믿었기에, 직업적 명성이 아닌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 얼마 후, 사건 담당자였던 검사가 나타나 재심을 막으려 한다. 그는 혈기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게 재판이라며, 준영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준영은 의뢰인을 팔아 취직할 수 없다며, 그와 당당히 맞서기로 결심한다.


감독은 인간미 넘치는 주인공의 특성을 잘 살렸다. 준영이 동네 사람들과 격 없이 어울리는 장면이나, 의뢰인들에게 둘러싸여 여러 고초를 겪는 모습이 정겹다. 특히 젊은 청년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준영의 따뜻한 시선이 좋다. 준영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현우의 법정대리인  이상이다. 그는 '관계 돌봄'을 통해 현우 스스로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는 현우를 향해, 넌 절대 살인자가 아니라며 외치는 준영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는 현우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보다 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지금 이곳에 조현우 씨의 변호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닙니다. 15년 전 대한민국 사법부가 한 소년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여기에 서있습니다. 부디 이 재판의 결과가 그 소년에게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영화 <재심> 중에서 -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먼저, 두 사건 모두 진범에 대한 제보가 있었지만, 사익을 위해 덮었.  누명 쓴 소년들이 강압에 못 이겨 죄를 인정했고, 공권력이 정의가 아닌 치부를 덮는 데 쓰였다. 마지막으로 신념과 연대의 힘으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항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권력자의 사익에 쓰여서도,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부조리를 견제하기 위해 '관계 돌봄과 연대의 힘'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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