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의 <삼국사기> 솔거 편을 보면 연습의 중요성을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솔거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붓을놓지 않았다. 당시 그림 재료는구하기도 어렵고 스승을 만나기엔 턱없이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단군을꿈에 본 이후로1천 폭의 초상화를그렸고, 그림 의뢰를 받으며 국민 화가로 등극하였다.
연습 벌레인 동시에 집념의 소유자인그는고객의 요구에 맞추기보다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단지 부귀영화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쓰고 싶지 않았다. 얼마 뒤 그는황룡사 담벼락에 소나무를그렸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들이 찾아와 앉을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옅어진 그림에 누군가 덧칠을 했는데, 그 후로 새들이날아들지않았다.
[ 파브리아노 워터칼러 스케치북, 신한 물감 ]
나는 평생 그림에 대한 열망을 지우지 못했다. 20대 유화를 시작으로, 30대 민화를, 40대 어반스케치와 수채화로 욕망의 끈을 이어왔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마다 영 낯설다 싶은 건 없었다. 다만 오래 하지못하는싫증쟁이라, 고작 6개월 남짓 배우다 손을 놓는다. 이유도 다양했다. 시간이 없어서, 선생님이 나와 맞지 않아서, 회원들과교류하는 게 힘들어서등등 늘 그만 둘 이유를 찾았다.
그럼에도 수채화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쉽게 다가갔다아뿔싸 하고 뒷걸음질 치는 게 수채화 아닌가.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싶지만,완성작마다 달라지는색채가매력적이다. 개강 이후 한 달 이상은 같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그렸는데,너무 어렵다싶으면서도재미가 붙었다. 첫그림보다 두 번째 그림이 낫고, 그 이상은 더 날 나위 없다.그걸 체험하는 순간 연습의 의미를깨닫게된다. 꾸준히 연습하면 발전할 거라는 희망,그것이원대한꿈의 시작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쓸수록 는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한 줄 한 줄 새겨 넣다 보면 한 편의 작품이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비유를 많이 드는데, 1주일에 한 번이면1년 모아 46편으로 책 한 권의 분량이된다. 글만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반복된 훈련만이 전문성을높이는 길이된다. 오랜기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달라지는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순간에 느끼는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학생이 책 읽기보다는 글쓰기가 더 재밌단다. 딱 5개월 만의 일이다. 왜 그러하냐고 물으니, 자신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예전에 비해 글 쓰는 게 힘들지 않고,어쩔 때는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괜찮단다. 특히 수행평가나 독서감상문을 쓸 때면 어깨가 으쓱올라간다는 고백. 매번결과물이나올 때면뿌듯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난 좀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까지 든다. 특별한 존재라는 만족감이드는 순간, 그것은 희열로 남아 나를 일으키는 힘이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오래된 속담에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가볍게 내리는 빗줄기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이라도 반복적으로 행하다 보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 꾸준히 실천한다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 다만 그 일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수동적인 이끌림이 아닌 능동적이고 창의적인노력을 행한다면목표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