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아파트 모퉁이를 돌아 나가자 정지 신호에 걸렸다. 아침 9시 회의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까지 해야 할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핑계를 대야 하는지 고민되고 걱정된다. “빠~~ 앙” 뒤에서 경적을 울린다. 신호가 바뀌어 파란불로 바뀌었다.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여분인데 영원히 도착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메일 확인을 하고 쓴 커피를 한잔 마신다. 사무실의 아침은 분주하다. 이메일을 보내는 키보드 소리가 울린다. 대충 이메일을 확인하고 헤드폰을 쓴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회의가 비대면 회의로 열린다. 그나마 다행이다.
회의가 시작되고 각 부서별 실적에 대해 발표를 한다. 잘된 점, 부족한 부분들을 발표하고 대책들을 발표한다. 내가 발표할 차례가 오자 괜히 가슴이 떨린다. 파일을 열어 일주일간의 실적을 발표한다.
실적 미달성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발표한다. 대책에 대해 좀 더 세분화해서 추가로 보고하라고 한다. 대표이사의 찡그린 표정을 상상한다. 아마도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 상상된다. 다행히 회의는 특별한 일 없이 끝났다. 다만 해야 할 숙제가 다시 생겼다.
긴장을 한 탓인지 머릿속에 땀이 난다. 매번 하는 회의인데 아직까지 익숙하지가 않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일로 남에게 발표하는 자리도 긴장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스피킹의 달인이었던 스티브 잡스도 이런 고민으로 인해 병을 얻었던 게 아닌가 한다. 적당히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잘하기 위해서는 나의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남는 것은 마음과 몸의 병뿐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 뒷산에 오른다. 회사 주위에 이런 산이 있다는 건 참으로 큰 행운이다. 점심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돌며 마음을 정리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백만 송이 장미 공원을 만난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자태를 드러낸 빨간 장미꽃이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폭염으로 인해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줄었지만 언제나 사랑받는 장소이다. 장미꽃 사잇길을 걸으며 가족을 생각할 것이고, 내일을 걱정할 것이고 때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오후는 다른 부서와의 회의로 시작한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현황에 대해 리뷰를 하고 분석을 한다. 부족한 부분은 부서별로 나누어 실행 계획을 세운다. 가끔씩은 프로젝트의 지연 원인에 대해 얼굴을 붉히며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책임지기 싫은 것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며, 책임에 따른 일이 추가로 발생한다. 모두들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예능 프로의 구호가 현실의 업무에 적용이 되는 순간이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부서 간의 업무협조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매번 전략을 발표할 때나 계획을 수립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내일이 아니기에.
“개발 부서에 있는 김대리가 퇴사를 한다는데요.”
커피 한잔을 타서 책상으로 돌아오는데 인사부서에 있는 후배가 얘기를 한다. 심각하다는 표정이다.
“갑자기? 그 친구 입사한지도 얼마 안 됐잖아? 무슨 일 있었어?
처음 듣는 이야기라 반문을 했다.
”이번에 삼성에서 엔지니어를 많이 뽑았는데, 거기로 가나 봐요. 몇 명 더 있는 것 같은데. “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삼성에서 대규모로 인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당분간 적지 않은 소용돌이가 있을 것 같다.
책상에 앉아 다시 보내온 업무에 대해 이메일 답장을 한다.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었다. 이제 유럽 엔지니어들이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다. 다시 그들과 일의 진행 상황에 대해 이메일을 주고받고, 가끔씩은 채팅을 통해 업무 상황을 공유한다. 유럽의 직장인들은 대체로 느긋하다.
똑같은 일을 처리하는데 한국 직장인들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확인이 먼저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함께 일하기가 어려운 상대다. 일 년에 두 달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열 달을 일한다는 사람들이니 우리가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국제화를 외치고,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5시가 넘어가면서 이제는 하루를 정리한다. 일찌감치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남은 일 때문에 여전히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시간이 되면 온 몸이 지친다. 막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몸에 힘이 빠지고 물먹은 스펀지처럼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이 탓일까. 아닌 것 같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도 퇴근하는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직장인이 가져야 하는 저녁병인가 보다. 책상을 정리하면서 살며시 앞에 있는 상사의 눈치를 본다. 퇴근 시간에 대해 특별한 규정이나 강제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치가 보인다. 당당해지자. 마음속으로는 외치지만 여전히 정시 퇴근은 부담스럽다.
회사 밖은 여전히 뜨겁다. 사하라 사막이 이렇게 뜨거울지도 모른다. 낙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그늘 하나 없는 사막을 묵묵히 걸어가야 하니. 차 시동을 걸고 음악을 크게 튼다. 노래 가락에 하루 동안 나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려고 노력한다. 남겨진 것은 가는 동안 도로에 쏟아 버려야겠다. 그래서 저녁 시간대의 도로는 사람들이 버린 감정 쓰레기로 가득 찬다. 버려진 감정 쓰레기는 달님이 모두 수거해 가신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지만 현실은 반복적인 일들로 만들어진다. 누구나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며 산다. 생각이 바뀌거나 다른 새로운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변환점에 다다른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일과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매일매일 꿈꾸며 산다. 그래도 현실은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내 삶이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금은 그 용기가 절실히 필요할 때다. 오늘도 공돌이로 알차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