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코로나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by 원영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오래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권영길 후보가 내건 캐치프레이즈이다. IMF로 모든 국민들이 힘든 시기에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구호다. 대통령 후보의 구호 중 기억에 남아 있는 몇안되는 말이다. 그만큼 그 시절의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많은 좌절과 힘듬을 경험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려움을 가장 빠른 시간내에 극복해 냈다. 그가 말한 살림살이는 온전히 나아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20년이 지난 오늘 또 다른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어쩌면 IMF보다 더 쎈 아픔과 힘듬이 우리를 짖누르고 있다. 헤어나올 수 없는 터널 속 깊은 곳으로 들어만 가고 있다. 언제 터널을 지나 뜨거운 태양을 맞이할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입추가 지난 저녁 바람을 쐬러 나갔다. 아파트 입구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 한다. 우리 선조들의 24절기는 신들린 듯 정확히 맞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기온이 높아 열대야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주 추석을 보내면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이젠 가을의 아름다움을 즐겨야 하는 때이다. 올해는 여름 휴가를 못 갔는데 벌써 여름이 저 멀리 달아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어쩌겠는가! 올해 나의 운명인 것을.


신호등 건너 작은 카페를 들러 아이스 커피를 산다. 몇 평인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카페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기계가 우리를 맞이 한다. 무인 키오스크에 주문하고 싶은 것을 입력을 하고 카드를 넣으면 주문이 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농구 대통령 허재가 키오스크를 작동하는 방법을 배우느라 애쓰는 장면이 기억 난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가게들이 많아지고 있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을 하는 가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무인 기계를 설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새로움에 적응이 필요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들고 한모금 마시며 도로를 따라 걷는다.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더만족’ 족발집에는 벌써 불이 꺼져 있다. 일찍 장사를 끝내고 오늘 일과를 마무리 한 것 같다. 족발집 사장님과는 제법 안면이 있는 사이여서 가끔씩 사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젠 마주보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는 듯 해서 안타깝다. 족발집을 지나자 치킨집이 보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제일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던 가게이다. 바비큐 숯불로 구운 치킨이 맛있는 집이다. 가게에는 나이가 있는 아저씨 두 사람만 치킨을 시켜놓고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머지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사장님의 손놀림도 오늘은 쉬고 있었다. 눈으로 사장님과 인사를 하고는 얼음을 입에 물고 깨물어 먹는다.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것은 커피가 남아 있기 때문일까?


모퉁이를 돌아 단독주택이 있는 뒤편 굴포천 산책길로 접어든다. 날씨가 다소 시원해졌음을 아는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녁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동네 상가를 걸을 때 보다 활력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같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곳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묵묵히 버텨 내기 위해 이곳 굴포천으로 나와 자신만의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굴포천의 가장자리는 키가 훌쩍 커버린 들풀들로 가득하다. 그 풀숲에는 예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아마도 어미새들이 둥지를 마련하고 새끼 새들을 보듬으며 가정을 이루고 있는 듯 하다.


살림살이가 나아지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까지 넘어야 할 코로나의 성벽은 너무나 높다. 하지만 아무리 성벽이 높다 한들 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제는 나아진 살림살이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족발집이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고, 치킨집의 치킨이 매진되는 날을 준비해야 한다.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며, 그날 우리는 오늘을 추억하며 또다른 살림살이를 준비 할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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