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부의 기준이 되는 세상.
‘이십 년을 일했는데 우리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 채 없다며, 아내가 운다. 욕심이 적은 아내. 아파트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허전한 마을 달래 줄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아파트는 없지만, 그래도 세 딸 낳아서 열심히 키웠다고 자신했는데. 아, 딸이 아니라 아파트를 낳았어야 했나. (이하 생략)’
8월 2일 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이다. 어느 중년 가장의 아파트에 대한 한탄을 나타낸 글이다. ‘딸이 아니라 아파트를 낳았어야 했나.’라는 글귀가 너무나 슬프게 가슴에 와닿는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집은 가장 포근해야 할 안식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재테크를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프다. 어딘가에 하소연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프다.
젊은이들, 특히 2,30대의 사회 초년생들은 아파트 가격의 폭등에 망연자실한다. 영끌(영혼을 끌어모아)을 해서 집을 마련하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열심히 일을 하고 노력을 하면 나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이 사라지는 것이다. 꿈을 잃은 그들의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소박한 꿈도 폭등하는 아파트 가격 앞에 무릎을 꿇는다. 우리 사회의 허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올라온 이후 월세와 전세방을 전전했던 나 또한 내 집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부모님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셨지만 내 집 마련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삼 남매가 학교를 다녀야 했고, 할머니까지 모셔야 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던지. 월세를 내고 생활비로 지출하면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은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하며 조금씩 저축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집 마련은 힘에 겨운 일이었다. 결혼을 하면서도 여유가 많지 않아 가격이 싼 전셋집으로 시작을 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를 다닌 끝에 아파트에 당첨이 되어 내 집을 가질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한 지 16년 만이었다. 부족한 돈을 대출해 준 은행이 가장 고마운 친구였다.
내 아파트에 첫 입주를 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처음으로 내 집을 갖게 된 날이었다. 그때 아이들의 나이가 7살, 5살로 기억된다. 아이들과 함께 방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내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을 너무나 기뻐했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그렇게 진실되고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거실을 돌아다니며 신기해했고, 화장실이 2개인 것에 놀랐다. 이전까지의 집과는 너무나 다른, 궁전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의 기쁜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났다. 내 집을 가진 기쁨은 지금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벅찬 일이었다.
‘당신은 지금 얼마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까?’
매일매일 올라가는 집값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파트는 평범한 삶의 공간이어야 한다. 거래나 돈벌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순간 가진 자들이 모두 독점한다. 그들이 부를 점유함으로써 미래의 꿈을 키우는 청년들의 꿈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우리는 미래를 잃고 오늘만 존재하는 시한부 사회가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게 된다. 아파트는 그 자리에 있는데 가치만 올라가는 현상이 안타깝다.
내가 어린 시절 가졌던 집에 대한 욕구를 지금의 청년들은 더 절실히 원하고 있다. 집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며 원천이다. 이러한 원천을 중심으로 좀 더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꿔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한 순수한 노력은 무너지게 된다.
오로지 집을 마련하기 위한 돈벌이에 집중을 하게 된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영끌을 해서 집을 사려고 노력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미래가 곧 우리의 미래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반성을 해야 할 시기다.
돈이 꿈보다 앞선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꿈은 항상 지키고 보호해야 하며 계속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을 노량진이 아닌 거친 들판으로 보내야 한다. 얼마짜리 아파트에 사는가가 아닌 얼마나 큰 꿈을 꾸고 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꿈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