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인이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나 근사한 계획이 없다고 하더라도 금요일은 내게 설렘을 준다.
한주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있지만 이틀의 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일주일의 치열함과 바쁨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는 설렘이 금요일이 주는 행복이다.
주 5일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토요일에도 4시간씩 근무를 하곤 했다. 하루의 반만 근무를 한다고 해서 반공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던가 당구장에서 남은 반나절을 보내기 일쑤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를 위해 투자하던 시기였고, 모든 일상의 중심은 회사였다. 그리고 젊었으며, 함께하는 생활이 익숙한 시기였다. 지금과 같이 무더운 여름날에는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가까운 바다나 냇가로 함께 물놀이를 떠나기도 했다. 여전히 추억 속의 한 구석에는 이런 날들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제는 일주일에 5일만 일하는 세상이다. 아직 토요일까지 일하거나 일주일 내내 일하는 자영업자들도 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6일을 일하고 하루의 쉼을 위해 일요일을 만드시고 안식을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도 쉼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쉼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다. 하루로 부족해서 이틀의 쉼을 필요로 한다. 신체 구조의 변화로 우리들의 몸이 더 많은 쉼을 필요로 하는 것인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부장님, 청정 지역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실래요?” 옆 사무실에 있는 인사팀 후배가 커피를 마시면서 은근하게 말을 건넨다.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며 술을 즐기던 친구다.
“지금 청정 지역이 어딨어? 전국이 난린데. 오늘도 2천 명 나왔잖아” 의아한 듯 답을 했다.
“저희 집이요. 오늘 마누라랑 애들이 휴가 간다고 해서 집에 아무도 없어요. 집 옥상에서 한잔 하시죠.” 오늘은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설명을 한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해 보인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사무실은 조금씩 활기를 찾는다. 일주일을 정리하기 위한 주간 보고서를 작성을 하고, 일부는 주말 사이의 전달 사항들을 현장에 전달을 한다. 오전의 사무실과는 다르게 오후의 분위 가는 생동감이 넘친다. 좀 더 여유로워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
전화벨 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저녁 약속을 하는 소리, 내일 해야 할 일들에 대해 통화를 하는 소리들이 주위를 가득 채운다. 휴대폰 기지국의 통화 연결 건수를 실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이 가장 복잡한 거미줄이 아닐까 한다.
오후 3시가 지나면서 책상의 자리들이 하나둘씩 비워진다. 자율 출퇴근제로 인해 오후 3시부터는 퇴근을 할 수 있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각자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그들만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윗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상사의 눈치와 퇴근 시간은 항상 반비례한다.
5시를 전후해 책상을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회사에서 저녁을 먹고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꾼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회사 정문을 나서니 여전히 태양이 뜨겁다. 내 마음도 이틀의 쉼에 대한 생각으로 설렌다. 금요일 밤을 왜 불금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일주일의 분노와 아픔을 불태워 버리고 주말의 쉼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퇴근하는 차 안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를 틀고 가장 흥겨운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불금을 준비하기에 신나는 음악은 가장 좋은 전주곡이다.
직장인으로서 금요일 오후는 월급날만큼의 설렘을 갖게 한다. 설렘은 주말을 지나면서 사라지지만 다시 맞이할 설렘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지만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 금요일 오후의 설렘이다. 이렇게 일상의 설렘을 반복하며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