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작은 맥주집이 있다. ‘어깨동무’라는 맥주집으로 일흔이 넘은 부부가 운영을 한다. 이곳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장소다. 축구, 족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을 마치고 몸에 밴 땀 냄새와 함께 이곳에서 뒤풀이를 하곤 한다.
종목이 다른 사람들과 여러 번 마주치면서 이젠 서로 인사도 하고, 가끔씩은 소주잔으로 건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곳이 이렇듯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장님 부부의 탁월한 영업력과 친화력이 아닐까 한다.
사장님은 오래된 단골에게도,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언제나 존댓말을 쓴다. 제법 친해졌으면 가벼운 반말로 친근함을 표시할 만도 한데, 언제나 존댓말로 맞이해 주신다. 한 세대 혹은 그 이상의 세대 차이가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공손하다.
누군가는 장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님을 모으기 위한 장사 수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칠십이 넘은 나이로 그렇게 꾸준하게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단지 손님을 끌기 위한 장사 수단으로 생각 하기에는 너무나 진심이 느껴진다.
금요일부터 주말로 이어지는 저녁에 어깨동무는 술손님들로 가득 찬다. 손님이 자리를 가득 채우면 사장님은 알찬 서비스 안주를 내주고는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는 등 덕담을 해 주곤 한다. 그러고는 작은 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함께 건배를 한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부터 사랑방 어깨동무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식당들이 그러하듯 확진자가 많아지고 모임을 줄어들면서 손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달로 음식을 주문하고 외부 생활을 줄이면서 어깨동무도 이전과는 다르게 사람의 온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사장님의 얼굴에도 근심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분인데 코로나로 인해 걱정이 많으신 듯했다. 어려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다.
나는 평생직장 생활만 해서인지 자영업자들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현실감이 부족하다. 단지 영업시간이 단축되고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어렵겠구나 하는 인식 정도이다. 하지만 술이 한 순배 돌면서 이러한 상황도 망각하게 되고, 곧 현실 속으로 들어와 술친구들과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오늘 일어난 소소한 일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10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손님들이 모두 떠나자 일흔이 넘은 사장님께서 소주잔을 들고 우리 자리에 합석을 하신다.
“사장님 많이 힘드시죠?”
술기운이 퍼진 목소리로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이 진심인지, 술기운의 안부 치레였는지는 서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에이,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뭘. 우리만 힘든 게 아닌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씁쓸한 표정을 하며, 쓴잔을 한잔 마셨다. 이내 복잡한 마음이 있는 듯한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는 거지,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나? 그래도 이렇게 같이 술 한잔 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우리에겐 희망이지...”
코로나로 인해 가는 곳마다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곧 좋아지겠지. 희망을 가져. “ 하지만 오늘 칠순의 사장님이 얘기한 희망을 들으며 그동안 내가 얘기했던 희망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지 후회가 되었다. 어깨동무 사장님의 희망은 삶의 진정성이 살아 있는 진실된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이렇게 포기하지 않은 진심 어린 희망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여운이 길게 남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