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주방과 냉장고 사이를 오가며 열심히 준비를 한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같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아내의 생일상을 차려 준 적이 없었다.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간이 커도 너무나 큰 간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끔씩 친구들의 생일날 남들 신랑은 어떻게 해주었네 하며 보여주는 사진들을 애써 외면했었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에 살짝 짜증이 났지만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침 생일상을 차린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주방에 들어섰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만들어 본 음식이라고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으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 있는 딸아이를 깨워 도움을 요청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짜증이라도 냈을 텐데 오늘은 깨지 않은 눈을 비비며 순순히 내 요청에 응해준다. 이럴 때 가족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딸아이는 미역국을 담당하고, 나는 계란말이를 담당하기로 했다. 내가 미역국을 끓이고 싶었으나, 아내의 아침 생일상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주방 베란다에 있는 대파를 가져다 작은 크기로 썰어 접시에 모아둔다. 요즘 금값인 계란을 넉넉히 꺼내 큰 양푼 그릇에 놓고 흰자와 노른자가 잘 섞이도록 힘껏 젓는다.
아내가 봤으면 비싼 금계란을 많이 쓴다고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잘 섞인 양푼 그릇에 잘게 썬 대파를 모두 넣고 다시 한번 잘 젓는다. 이제 맛있는 계란말이를 위한 준비를 끝났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온도가 올라오면 양푼 그릇에 있는 계란물과 대파 썬 것을 프라이팬에 붓는다. 기름과 어우러져 맛있는 소리를 내며 계란의 색이 변하기 시작한다. 긴 나무 주걱을 이용해 프라이팬의 안쪽 부분부터 조금씩 말이를 한다.
서투른 탓인지 말려지는 계란의 양쪽 끝과 가운데의 두께 차이가 많이 난다. 사실 난 오늘 처음 계란말이를 해본다. 김밥천국에서 파는 계란말이만큼의 예쁜 모양이 아니다. 계란말이 중간이 터져 계란물이 조금은 흘러나오고, 가운데는 두껍고 양쪽 끝은 가볍다. 하지만 ‘모양새가 오늘의 포인트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내가 계란과 씨름을 하는 사이 딸아이는 제법 솜씨 있게 미역국을 끓이고 있었다. 재료가 뭐가 있는지 냉장고를 보더니 후다닥 나가서 소고기와 다진 마늘과 참기름을 사 온다. 미역을 먼저 넣고 약한 불에 끓이다가 소고기를 넣고 다시 끓인다. 소고기가 익을 때쯤 물을 붓고 양념을 넣어 제법 미역국 냄새가 나는 요리를 했다. 숟가락으로 맛을 보니 밀 키트에 들어있는 미역국보다 더 훌륭한 맛이 난다. 딸과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하이 파이브를 했다.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거실로 안내를 했다. 아침 밥상을 보더니 작은 미소를 짓는다. ‘이건 누가 했어? 이건 누가 했고?’ 궁금한 듯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쏟아낸다. 대답을 하지 않고 빨리 먹어보라며 숟가락을 건넨다.
“음, 맛이 좋은데. 간도 잘 맞고. 계란말이는 비주얼은 그런데 맛은 좋네”
숟가락을 입술에서 놓지 않은 채 감탄사를 연발한다. 마지막까지 누가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아빠와 딸이 한마음으로 엄마의 생일상을 차린 것이라고만 알려 주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면 생일상의 효과가 더 있었을까?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딸과 함께 차린 생일상이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처음으로 차려진 생일상을 보며 그동안 이런 선물을 왜 주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생일날은 언제나 외식이 전부였고, 특별한 감동도 없었다. 당연히 그러면 되는 것으로 알았고 그래 왔다.
하지만 오늘 생일상을 준비하며 가슴속에는 뿌듯함과 행복함이 함께 했다. 작은 것이고 서투르지만 내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지금 무언가를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큰 행복을 얻는 것이다. 작은 변화가 큰 행복을 주는 것이다. 비싼 음식을 먹는 것보다 옆구리 터진 계란말이에 미역국을 가족과 함께 먹는 것이 더 행복하다. 내가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고 느끼는 것이 우리 삶을 더 행복하게 한다. 오늘 저녁에는 애호박을 송송 쓸어 넣은 손칼국수에 도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