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에 대한 아련한 추억

사람들의 행복은 만남에서 시작된다.

by 원영대

당신은 오일장을 가본 적이 있습니까?

나의 오일장에 대한 추억은 아련하다. 어린 시절 오일장은 흑백 TV 속의 만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주제였다. 학교를 마치고 장에 들르면 동네에서 마주하던 어른들이 여기저기에 모여 물건을 사고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다가가 인사를 하면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호박엿을 사주었고, 귀엽다며 용돈을 주기도 하셨다.


집에서 기른 콩이며, 닭들을 팔아 마련한 현금이 두둑했었고, 이웃마을 아저씨들과 술 한잔을 하는 축제 같은 날이었다. 벼 수매가 있을 즈음의 장날은 곳곳에서 웃음 가득한 대화가 들리곤 했다. 어른들은 국밥집에서, 아이들은 중국집에서 장날의 풍요로움을 즐겼다. 거래가 잘 성사되어 좋은 값을 받은 날이면 할아버지는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시키 주셨다. 손자들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술 한잔을 드시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바라보시곤 했다.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생전에 이천에서 생활을 하셨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자주 이천에 내려갔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이전만큼 내려가지는 못한다. 작은 아버지와 고모들이 이천에 계시지만 예전에 비해 내려가는 빈도수는 줄어들었다.


고모들을 만나러 이천에 내려가기 전에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이천 장날을 피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큰고모와 작은 고모는 이천 시장통에서 함께 장사를 한다. 주 종목은 호떡과 각종 먹을거리다. 여름이면 옥수수를 쪄서 팔고, 겨울엔 어묵을 호떡과 함께 판다.

지금은 발전된 도시가 되었지만, 이천의 장날은 여전히 북적이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고모들은 평상시에 비해 두세 배의 매출을 올린다. 이천 장날은 2일과 7일장으로 고모들은 이날 평소보다 일찍 장사를 준비하고 늦게까지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다 떠난 늦은 밤이 돼서야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몇 해 전 여름휴가를 맞아 이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그날이 장날이라 고모들과 함께 장사를 하였다. 몇 포대의 옥수수를 나르고 껍질을 까서 고모에게 주면 고모는 맛있게 옥수수를 쪄서 한 묶음에 3천 원에 팔곤 하셨다. 마치 내가 주인인 듯 머리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연신 옥수수를 까는 모습은 영락없는 장사치였다. 나를 쳐다보는 고모들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오일장에 가면 주머니 사정 부담 없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어서 좋다. ‘백화점에 납품합니다’라고 써 붙인 옷가게에 들어가 가격표를 보니 백화점의 반의반값이다. 아내는 득템을 했다며 몇 벌의 옷을 더 샀다.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니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설령 그것이 백화점에 납품되는 옷이 아닐지라도 장날의 기분은 덤으로 얻은 것 같아 좋다.


오일장은 정돈이 되지 않아서 좋다. 백화점의 정돈된 물건들과 데코레이션이 예쁜 옷들과는 달리 오일장의 모습은 정돈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정돈되지 않은 것 때문에 가끔씩은 자리싸움으로 고성이 오가곤 하지만 이내 막걸리를 한잔하며, 서로의 인생을 다독이곤 한다. 이내 형님, 동상 하며 크게 웃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오일장의 진짜 매력은 지금은 연예인처럼 보기 힘든 각설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엿가위를 두들기며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흥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른다. 전문가 솜씨로 잘라낸 엿은 왜 그리 맛있는지 상상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각설이가 뿜어내는 구성진 가락에서 해학을 느끼고 시장 사람들의 애환을 느끼곤 한다.


이제는 오일장도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시설도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규모도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오일장을 방문하는 날이면 예전에 할아버지가 짜장면을 사주시며 밝게 웃으시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오일장의 모습과 추억은 내 마음속에 계속되고 있다. 닷새마다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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