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의 추억이 아련한 하루

가난했던 젊은 날이 부러워지는 날.

by 원영대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넘는 폭염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력 공급 한계치에 도달해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에어컨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연일 방송을 한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버텨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이내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선풍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뜨거운 바람만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입에서는 연신 덥다는 말만 내뱉는다. 덥다는 말이 식구들의 돌림노래가 된다.

주말인데 남들처럼 시원한 계곡으로 달려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코로나 4단계로 인해 급한 일이 아니라면 당분간 집에 머물러 줄 것을 회사에서 권고했기 때문이다. 아직 회사를 더 다녀야 할 이유가 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법을 지키듯 회사의 권고를 잘 준수한다. 잘리면 안 되니까. 하지만 너무나 덥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여름을 맞이하는 것 같다. 에어컨을 켜고 두 발을 소파 모서리에 걸친 채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잘 들 지내나? 뜨거운 여름 잘들 보내고 건강들 조심해라’ 짧은 문자를 보냈다. ‘그려. 몸 건강하세....^^’, ‘덥다... 더워’ 돌아오는 문자도 짧다. 문자 메시지도 더위를 타는가 보다. 길어지면 더우니까.


대학교 시절 친구들은 상도동 쪽방에서 함께 생활을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도 있었고, 집이 멀어 같이 생활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낮에는 회사를 다녀야 했기에 가끔씩 쪽방에서 함께 지내곤 했다. 그 시절은 모두 집에서 보내주는 향토 장학금으로 생활을 했기에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누구 하나 불평을 하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알바라도 해서 돈을 받아오는 날이면 고기 파티를 할 수 있었다. 수업이 대부분 야간 시간이었고, 마지막 수업은 10시 5분에 끝났다. 학교에서는 집까지 10분 정도 걸렸다. 수업이 끝나면 알바를 했던 친구가 고기를 사고 나머지 친구들이 술이며 라면을 샀다. 집은 장승배기에서 사당으로 넘어가는 차길에서 한참 언덕을 올라야 했다.


오늘과 같은 여름날 집으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다 보면 옷에 땀이 흥건히 젖는다. 어차피 내일 다시 입을 옷이다. 집에 도착을 해서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20대의 청년들에게 고기는 늘 부족했다. 고기를 구웠던 프라이팬에 밥을 넣고 남은 김치를 비벼서 나머지 배를 채웠다. 남아 있는 빈속은 소주로 마무리했다. 행복했다.


그 시절,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자신의 몫을 생각하고 바랬다면 상도동의 추억은 없었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궁핍했던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상도동 언덕 높이보다 더 높았던 믿음 때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학교 아래에 있는 시장에서 천 원짜리 안주에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어깨동무를 하며 언덕을 올랐다. 힘든 줄 몰랐다. 가끔씩 술기운에 부르는 노동가요 때문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신고를 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삶이 고달플 때 우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세상에 하소연을 하곤 했으니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비를 막기 위해 지붕에 오르거나 비닐을 친다. 판잣집보다는 한 수 위의 집이었지만 언덕 위에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 온전한 집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이곳 상도동에 이런 언덕 위의 집들이 생겼는지 역사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이 온전한 모습의 집들은 아니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은 모두 집수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날들이었다.


상도동 언덕 위의 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멋진 아파트가 세워졌다. 그 높은 언덕 위에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기술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덕분에 내 상도동 추억은 기억 속에서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 추억의 기억을 위해 건설사가 기다려 주지는 않을 테니까. 가끔씩 그곳을 지나갈 때면 옛날의 추억을 기억하곤 한다. 멋진 아파트를 바라보면서.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저마다의 일상에 충실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고, 사업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영업을 하러 다닌다. 이젠 좋은 고기를 맘껏 사 먹을 만큼 여유가 있고, 비가 많이 와도 천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좋은 집도 있다.


살면서 함께 본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문자로 전하는 그들의 소식은 여전히 반갑다. 친구들도 그 시절 상도동의 추억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세상살이가 힘겨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한다.


상도동 추억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것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없었으며, 나를 앞에 내세워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함께였으며, 미래에 대한 꿈도 함께 꾸었기에 상도동의 추억은 아름답다. ‘그려. 몸 건강하세....^^’ 이 한마디의 문자가 한여름의 폭염을 식혀주는 시원한 물줄기와도 같다. 그의 말대로 건강이 살아 있는 동안 그곳에서의 추억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프라이팬 남은 돼지고기 기름에 밥을 넣고 만든 비빔밥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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