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고귀하게 지켜내야 하는 이유
“아빠, 군대 동기가 죽었어. 오늘 아침에 연락 받았어.”
수화기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무슨 소리야? 어떤 동기인데?”
“부사관 학교 동기야. 나하고 부사관 학교하고 초급반도 둘이 같이 간 동기야. 오늘 가평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데. 그래서 지금 대대장님께 보고하고 장례식장에 가는 중이야.”
“무슨 일이래? 갑자기 죽다니? 혼자 가는 거야?”
“응. 부대에서는 동기가 나 혼자라....일단 장례식장 갔다 와서 다시 알려줄게.”
아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큰 충격을 받았음을 들려오는 전화기 소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요즘 TV에 이슈가 되고 있는 군대내의 불미스러운 사고때문인지 아니면 훈련중에 발생한 사건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군인의 죽음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의 심정이다.
저녁 늦게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중이라고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위로를 먼저 해야 하는지, 궁금한 것을 먼저 물어봐야 하는지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혼란스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아내가 전화를 달라고 한다.
“아들, 괜찮아? 버스탔어?”
“응, 오늘은 집으로 갈게. 휴가 냈으니까 집에 들렀다가 주말 지나고 부대로 가야 할 것 같아.”
“태우러 갈까?”
“아니야. 버스 탔어. 1시간정도 걸릴 것 같아.”
“알았어. 조심히 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디게 더디게 갔다. ‘전화 통화할 때 동기의 죽음에 대해 좀더 물어볼걸 그랬나?’ 궁금하고 초조한 마음이 떠나지가 않았다. 아들은 통화한지 2시간 만에 집에 도착을 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잠깐 친구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왜 죽은거야? 그 동기는.” 거실에 들어서자 마자 아내가 참았던 물음을 쏟아낸다. 아들은 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오더니 거실에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죽은 동기는 부사관 학교 동기이고, 우리 부대에서 나하고 단둘이 초급반 교육을 같이 받으러 갔어. 방도 같이 썼고. 얼마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
”개네 같은 부대 부사관 몇 명과 가평 어딘가에 가서 다이빙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데. 119가 와서 병원으로 가다가 이송 도중에 죽었데.“
”개는 몇 살인데.“ 아내가 눈치를 보며 이야기한다.
”스물한살. 외아들이야“
”에고. 그애 부모님 심정은 오죽할까? 다 키운 자식을 저렇게 보냈으니.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게 아니겠네..“
”그 친구 아빠만 보고 왔어. 엄마는 만나지 못했어.“
”그러겠지. 그애 엄마가 지금 제정신이겠어?“
사고 경위를 아들로부터 듣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을 방으로 들여 보내고 집을 나와 아파트 주차장 한켠에서 ‘하사사망’ 뉴스를 검색해보니 관련 뉴스가 나와 있다.
‘군 하사, 수심 3m 하천 다이빙한 뒤 숨져’
입대한지 1년 남짓한 젊은 군인의 죽음은 남들에게는 그냥 지나치는 뉴스 기사일 것이다.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 한 수많은 뉴스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의 군대동기의 죽음은 나와 아내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아들이 받아야 하는 충격은 그 이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죽음앞에 당당할 수 없다. 그것은 생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며,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이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부모와 가족과의 영원한 헤어짐이기 때문이다. 먼저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다. 어떠한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겨진 그들이 스스로 딛고 일어설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삶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삶의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야한다. 그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여운만 남을뿐이다.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젊은 육군하사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