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는 짧게, 고치기는 길게.

회사 다니면서 사표 쓰지 말고 책 쓰자

by 원영대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수업 시간에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전자회로 숙제를 하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공고 졸업을 하면 바로 회사에 취업을 하던 때라 영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영어 수업 시간에도 정식 영어 교재보다는 생활 영어를 배우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 수업시간이 줄어들었다. 때문에 영어 시간에 다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나 전공과목의 숙제를 했다. 다른 과목을 공부하다가 선생님께 들켜도 크게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아마도 선생님들도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포기를 한 것이다.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서 일 년이 지난 후 대학을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고졸과 대졸의 임금차가 당시로서는 크게 느껴졌다.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돈을 벌기 위해 대학 졸업장은 또 다른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대학 입시를 위해 학원을 알아보고 공부하는 방법도 선배들에게 물어서 입시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전자공학에 대한 공부가 전부여서 입시공부를 처음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른 과목들은 원하는 만큼 진도를 나갈 수 있었고 점수도 계속 올라갔다. 문제는 영어였다.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거의 받지 않았고 언어는 단기간에 실력이 늘지 않았다.



영어책은 당시 영어 초심자의 바이블로 생각되었던 ‘Man to Man’이었다. 처음부터 정독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기초를 공부했다. 하지만 동사, 명사 그리고 To부정사까지 진도를 나가면 그다음부터는 첵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To부정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앞서 공부한 동사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동사 부분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마음이 풀렸다. 몇 차례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영어의 진도는 항상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시간은 부족했다.


고민 끝에 주말에만 여는 Man to Man 학원 강의를 별도로 들었다. 강의를 들으며 진도를 따라가자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전체 책을 모두 학습할 수 있었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은 얘기지만 여기 단과 수업을 들으러 오는 사람의 90프로 이상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혼자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 찾아온다고 했다.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전체 책의 내용을 먼저 공부한 후 두 번째는 중요 핵심 부분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세 번째는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부분을 정리해서 나만의 정리 노트를 만들면 영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책 한 권을 세 번 이상 공부하면 원하는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했다. 정말로 그해 학력고사에서 영어 점수가 가장 높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은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쓰고 고치고 하는 일들이 반복이 되어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써 놓은 글을 수정하고 고치는데 시간을 투자하면 글쓰기의 진도는 나가지 않고 글쓰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글쓰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면 사람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고 목표는 사라진다.


글쓰기는 의심하지 말고 해야 한다.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음 쓴 글을 고치고 다시 쓰다 보면 완성된 글은 나오지 않는다. 초고는 되돌아보지 말고 써야 한다. 초고는 되도록 짧고 빠르게 쓰는 것이 좋다. 문장의 어색함이나 오탈자는 무시하고 일단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빠르게 써야 한다. 초고는 자신이 정해놓은 목차에 따라 쓰지 않아도 된다. 매일 글쓰기를 할 때 생각나는 주제를 먼저 쓰고 나중에 제목을 정리할 때 주제에 맞게 정리하면 된다. 결국 초고는 형식과 격식에 맞게 쓰는 것보다 빠르게 쓰는 게 좋다.

초고를 쓰는 기간은 3개월이면 충분하다. 주제를 정하고 개략적인 목차가 정해졌다면 3개월 안에 써야 한다. 초고의 기간이 길어지면 글의 집중도가 떨어진다. 때문에 자신이 정한 초고의 기한을 반드시 정하고 빠르게 써야 한다. 초고의 글쓰기는 컴퓨터 자판을 이용하는 방법과 함께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하면 훨씬 빠르고 쉽다.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은 운전을 할 때나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음성으로 입력을 하면 글로 변환해 주는 기능이다. 말로 쓰는 글은 자판으로 쓰는 글보다 속도가 빠르다.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는 대부분의 초고를 집에서 썼는데 느낌이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차를 몰고 정서진으로 갔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글을 썼다. 집에서 쓸 때와는 다른 감정이 떠오르곤 했다.



초고의 분량으로는 A4용지 100매가 적당하다. 일반적인 단행본의 경우 300페이지 정도로 출판되므로 A4용지 100매 정도의 초고가 필요하다. 폰트 사이즈는 보통 10~12 사이고, 줄 간격은 180~200% 사이다. 퇴고를 거치며 문장을 수정하면 보통 단행본은 250페이지 내외의 책으로 출간된다. 페이지가 많으면 읽는 사람이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서점에서 너무 두꺼운 책을 보면 내용을 보기도 전에 선택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도 책을 선택할 때 두꺼운 책은 쉽게 장바구니에 추가하지 않는다.

초고를 짧게, 빠르게 써야 한다면 고치기는 길게 해야 한다. 고치기 단계에서는 잘못된 문장을 수정하고 오탈자를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완성된 초고를 1차로 고치고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그들이 나의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쓴 글에서 잘못된 문장이나 오탈자를 발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내가 쓴 글에는 나의 감정이 포함되어 있어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발견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이 읽고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된 문장을 발견해서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고치기의 기한은 작가마다 다르다. 자신의 감정과 목적이 글에 잘 투영되었다고 느끼는 시점이 고치기의 끝이다. 초고는 빠르게, 고치기는 길게 하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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