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과 잠시 멀어지기

회사 다니면서 사표 쓰지 말고 책 쓰자.

by 원영대

“원부장, 비도 오는데 오늘 한잔 어때?”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안될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오늘 삼정동 홍어집 가서 삼합이랑 막걸리 한잔해.”

“정말 미안해.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 정말 안될 것 같아. 다음에 한잔해. 다음에 내가 살게.”


바쁘게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같은 팀의 유일한 동기인 김 부장이 다가와 술 한잔을 하자며 꼬신다. 밖엔 정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막걸리에 홍어 삼합을 먹기에 좋은 분위기다. 목에서는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목구멍에서는 오케이를 외치고 있었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실망하는 소리와 따가운 눈총을 뒤로하고 빠르게 사무실 문을 나섰다. 빗속을 뚫고 주차장으로 가서 시동을 건다. 오늘따라 빗소리가 김치전이 기름에 튀겨지는 듯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린다. 평소 한산했던 막걸리 파는 집들은 오늘만큼은 손님들로 가득 찬다. 막걸리의 텁텁함보다는 김치전의 기름진 냄새가 유난히 빗소리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자 아내는 동네 산책을 가자고 한다. 코로나 전에는 저녁을 먹고 늘 배드민턴을 치러 다녔다.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곤 했었는데, 걸어서 5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코로나로 인해 체육관 출입이 제한되니 운동을 하던 습관을 주체할 수 없어 가끔 아파트 주위 산책을 한다. 시간이 갈수록 산책로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 눈치를 보며 오늘은 어제 못다 쓴 글을 써야 하고, 분량을 채워야 한다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한다. 낮부터 나와 함께 운동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나의 거절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더니 막 퇴근한 딸을 불러 운동을 가자고 한다. 내가 눈짓으로 딸에게 구조 요청을 했더니 마음이 내키지 않은 모양이다. 손으로 3을 가리키며 나의 뜻을 전달하니 그때서야 엄지와 검지를 모아 오케이를 한다. 걷기 대타에 3만 원을 쓴 셈이다. 약속을 거절하고 운동을 포기하는 시간이 지난 뒤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이러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좋아하던 일을 미뤄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직장인으로서 퇴근 후의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나의 글은 영원히 지하에 묻혀 있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직장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퇴근 이후의 시간 활용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여전히 회식이나 퇴근 후의 부서 활동이 업무의 연장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밥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들이 정한 일정을 함께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나중으로 미루고 나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꾸준히 쓰고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글쓰기를 미루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퇴근 후의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휴대폰의 알람 기능을 활용하자. 아침에 모닝콜에 알람 기능을 활용하듯 저녁 시간대도 알람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 저녁 식사 후 휴식 시간이 지나면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서 같은 시간에 글쓰기를 시작하게 하자. 이렇게 일정한 시간에 글쓰기를 시작하면 퇴근 후의 시간을 계획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이 시간이 되면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된다. 매우 중요한 변화다. 8시가 되면 회사 일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나의 가족이 글쓰기 시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한다. 어떤 날은 두, 세 개를 버리거나 미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얻는 것보다 버리기가 더 어렵다.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자. 우리의 목적은 직장인으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일들을 모두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이제까지 좋아했던 일들을 정리하고 조금씩 멀리하면 새로운 좋은 일이 생긴다. 나만의 글쓰기 시간이 생기고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이 탄생한다. 누구도 좋아하는 일을 미루고 멀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긴다면 덜 좋아하는 일은 잠시 멈춰도 좋다. 멈춤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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