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니면서 사표 쓰지 말고 책 쓰자
우리나라 국악이 유렵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유럽은 고전 음악부터 근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책 속에서 배웠던 많은 예술가가 태어나고 활동한 곳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가진 문화적 자부심은 대단하다. 특히 유럽인들에게 공연 문화는 품격 그 자체다. 공연 도중에 자리를 벗어나는 일, 공연에 방해가 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 국악, 특히 판소리는 한번 공연에 예닐곱 시간을 쉬지 않고 이어서 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 판소리 공연이 있었다. 심청가가 일곱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다. 놀라운 것은 어느 누구 하나 자리를 뜨거나 지루해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들이 공연을 대하는 문화가 하나의 이유였다. 그들의 몸속에 배어 있는 관객 문화가 그들을 일곱 시간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계적인 이유였다. 진짜 이유는 판소리 심청가가 리듬감이 있었고 재미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봄철, 이양기가 아닌 수작업으로 모내기를 하던 시절에 모내기를 하는 날은 동네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넓은 논에 모내기를 하는 일은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허리를 굽혔다 펴는 일을 반복해야 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온 몸이 쑤시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때 모 줄을 잡은 사람이 농부가를 부른다. 가락에 맞춰 흥겹게 농부가를 부르면 신기하게 아프던 허리의 통증이 사라지고 입으로 함께 따라 부른다. 모내기 속도도 훨씬 빨라진다. 무엇 때문일까?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농부가 리듬에 맞춰 흥겨운 노래를 흥얼거리면 재미도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리듬이 없는 모내기는 많은 양의 막걸리도 감당하지 못한다.
글도 리듬이 있어야 한다. 리듬이 없는 글은 독자에게 버림받는다. 문장이 길더라도 리듬이 있으면 쉽게 읽힌다. 글은 기, 승, 전, 결이나 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하는 것은 글을 리듬감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내용에 리듬이 있으면 어려운 글이라도 쉽게 이해된다. 리듬이 없는 글은 문장을 읽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전에 홀로 살아계신 아버지를 걱정하는 대목이 와야 한다.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독자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리듬이 깨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글이 쓰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일정하게 흐르듯 글도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야 한다.
초고를 완성하고 수정하는 시간은 글의 리듬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첫 문장부터 마무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여러 번 읽고 확인해야 한다.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리듬감이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면 음성지원이 되는 툴을 이용해도 좋다. 귀로 들으며 문장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글을 귀로 듣다가 어딘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리듬이 사라진 것이다. 그럴 땐 글을 잘라본다. 글을 나누고 난 뒤 리듬이 살아난 것을 경험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문장을 짧게 쓰라고 강조한다. 짧게 쓰는 이유는 리듬감이 있기 때문이다. 긴 문장이라도 리듬감이 있다면 문제없다. 읽기 어려운 글은 리듬감이 없고 긴 문장이다.
● 내 핸드폰은 책상에서 여러 번 떨어졌어도 깨지지 않았고, 액정도 멀쩡했으며. 기능이 정상이었다.
● 내 핸드폰은 책상에서 여러 번 떨어졌어도 깨지지 않았다. 액정도 멀쩡했다. 기능이 정상이었다.
글의 느낌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첫 번째 문장에 비해 군더더기 없이 읽힌다. 첫 번째 문장은 글이 끊기는 느낌이 있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힌다. 특히 쉼표로 연결되는 반복 문장은 독자의 읽는 속도를 끊는다.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을 때 추가 주문한 고기가 늦게 나와 기다렸다 먹으면 원래의 맛이 사라진다. 고기는 쭈욱 연달아서 먹어야 제맛이다. 먹다가 고기가 끊기면 화가 날 뿐이다. 글도 막힘없이 연결이 돼야 하고 리듬을 타야 잘 읽힌다.
글에 리듬이 없이 자기주장만 강한 글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주장하기 위해 강한 어조로 쓰는 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으로 자신의 것을 주장한다. 주장이 강하면 독자는 시선을 돌린다. 연설을 할 때도 리듬 없이 자신의 주장만 말한다면 청중은 고개를 돌린다. 강강강강이 아니라 강약 강약 중간 약으로 리듬을 타는 글이 독자에게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