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렙돈 세계여행 중 115일차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힐라커뮤티니에서 오
2019년 2월 20일 수요일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을 것이며 그 남종의 한 이나 여종의 한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에 그를 놓을찌니라”
출애굽기 21:13-15, 23-27 KRV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무거운 짐을 지고 5 리를 가자고 하면 10 리를 가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예수님에게서는 넓은 마음과 상대를 이해하는 사랑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성부 성자 성령으로 같은 신격을 가지셨는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도 무자비 하실까?
한쪽은 공의에 하나님이고 한쪽은 사랑의 하나님일까?
용서하고 그냥 봐주면 안 되는 일일까? 예수님은 이미 억울해하고 있는 사람, 힘들어서 하소연하고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 용서하자! 그 사람은 벌써 잊고 지내고 있어! 너만 가슴에 담아두면 너만 힘들어! 그러면 그 속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잖아? 다음에 너가 왼쪽 뺨을 때려 달라고 하면 그가 지난 번에 오른쪽 뺨을 때렸던 일을 기억하게 될거야!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고 해주자!”
그런데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은 화가나서 눈을 뽑고 싶다고? 구약에 하나님은 일이 일어나기 전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해주신다.
“너 지금 화가나서 눈 뽑고 싶다고? 나도 화가났어! 너가 눈 뽑으면 나도 네 눈 뽑을 거야! 죄 짓지마! 너가 그런 마음을 품으면 너 마음속에 내가 들어갈수 없잖아!!”
결국 공의에 하나님이나 사랑의 하나님이나 똑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너 마음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한테는 최고의 죄이다. 신약과 구약의 말씀은 하나로 이어진다!
‘너 마음에 나만 들어가야 돼!’
결국 공의 속에 사랑이있고 사랑 속에 공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