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자들 _ 김초엽
'파견자들'을 읽은 독자들은 세 부류로 나뉠 것 같다.
첫 번째, 김초엽의 작품이면 무조건 좋은 마니아들. 아주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고 작가를 더 사랑하게 되리라. 두 번째, 김초엽의 전작을 모르고 소설 ‘파견자들’에 집중한 사람들. 여기저기 클리셰가 보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의 SF소설로 읽었을 것이다. 평가는 호불호가 반반일 것 같다. 세 번째는 나 같은 사람들. 이들은 늘 한 단계 높은 김초엽의 차기작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의 임계선까지만 수렴하는 작품들에 반신반의한다. 작가가 임계선을 뚫고 어떤 반열에 오르는 순간을 목격하고픈, ‘아직 남은 미련'을 거둘 수 없는 사람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스타탄생을 예감했고. ‘관내분실’을 접했을 때는 천재를 떠올렸을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 논쟁적이고 시의성 있는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장르물이라고 하기에는 품격이 높았다. 당연히 차기작을 관심 있게 기다리게 만들었다. 재미보다는 작가의 역량과 정비례하는 ‘작품성’에 방점이 찍힌 기대였다. 그런데, 기대에도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가…. 말미에 다시 말하겠지만, “김초엽”에 다시 열광하고 싶다.
파견자들을 읽으면서 떠오른 첫 이미지는 - 아쉽게도 - 최근에 본 드라마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원제: Silo)이라는 ‘애플TV’ 시리즈다.
모든 곳이 폐허가 되고 독성에 노출된 미래를 배경으로 지구에 남은 마지막 1만여 명의 인류가 지하 수백 층 깊이에 거대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그린 SF 스릴러다. 작가 휴 하우이의 디스토피아 3부작 소설 ‘울(Wool)’을 원작으로 했다. (사일로_애플TV)
파견자들을 읽는 내내 ‘사일로’의 이미지가 떠나지 않았다. 선험적 형식이 소설의 이미지를 지배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김초엽이 그리고자 했던 그림이 잘 떠올려지지 않았다. 언급했던, 두 번째 부류의 독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규모있는 SF 물의 속성상 어쩔 수 없이 등장하는 클리셰들이다. 적들(범람체)에게 점령된 지구. 비범한 능력을 소유한 주인공. 주인공의 영웅적 성장 과정, 폐허의 도시 배경, 등장인물(파견자)의 임무와 사건의 흐름. 인물들의 내적 갈등 등,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들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보았던, 기대하던 김초엽의 ‘솜씨’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김초엽답지 않았다.
하지만 주제만큼은 - 늘 - 압도적이다.
“파견자들"에서 김초엽은 지구는 (또는 세계는) 호모 사피엔스의 전유물이 아니며, ‘호모 사피엔스의 방식’이 ‘세계의 방식’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집요하게 녹이고 있다. 김초엽은 ‘minority’에 천착한다. '배척당하는 소수의 것'들에 대한 관심은 모든 작품에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에세이에까지 그의 가치관은 깊이 스며있다. "책과 우연들"에서 김초엽은 말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나머지, 별들이 주인공인 것이 분명한 밤하늘을 보면서도 인간을 생각하고, 개성 넘치는 생물로 가득한 심해를 보면서도 인간을 생각한다. (책과우연들)
그리고, 작가가 소수자(것)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도 잘 설명 되어 있다.
단지 이 작은 행성의 일부에 불과하기에, 살아가는 동안 이 행성의 이웃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지고 있기에….(책과우연들)
일관된 행보이고, “파견자들”에서도 그 기조는 잘 유지되었다.
"...자아란 착각이야.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 너희는 단 한 번의 개체 중심적 삶만을 경험해 보아서 그게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우리를 봐. 우리는 개체가 아니야.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하고 세상을 감각하고 의식을 느껴. 의식이 단 하나의 구분된 개체에 깃들 이유는 없어…...“(파견자들)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몰라서 더 아프다. 범람체의 의식을 빌려 김초엽이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단 한번의 삶을 자기중심적 세계관만으로 살아가는 무지몽매한 종에게 던지는 경고로 들린다.
김초엽의 메시지는 신선하다. 기발하다. 가치가 있다. 그래서 아깝다.
메시지를 어디에 어떻게 실어 보낼 것인지는 작가가 선택할 문제이다. 단지 그 선택이 김초엽만의 희소가치있고 차별적이기를 나는 꿈꿀 수 밖에.... 그것이 김초엽이 나아갔으면하는 길이다.
남은 것을 다 비우고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지 않는다면, 어쩌면 장르물에 갇히고, 마니아에 파묻힌 김초엽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나는 김초엽이 SF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소설 속 ‘이제프'처럼 '자신의 가치'만을 고집하여 머물지 말고, ‘태린'처럼 나아가길 바란다. 거장의 길을 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