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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Sep 13. 2023

|그림자가 없는 세계

 황무지를 걷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끼어드는 모래 알갱이들이 눈을 침범하여 비비적거리다가 파여있는 땅을 보지 못하고 그만 넘어져 버렸다. 먹지도 자지도 못한 성할 리 없는 몸이 힘없이 주저앉는다. 다시 일어날 기력이 없어 그 자리에 눕는다. 하늘을 마주하고 누우면 속이 울렁거려서 방금 막 잠든 아이처럼 비스듬하게 누웠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나의 절망을 대신했다.


 언젠가 그런 곳에 가보고 싶었다. 눈앞의 땅이 끝없이 연결되는 곳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어떠한 방향으로 가도 같은 풍경만 보이는 자리에. 그곳을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내 존재의 이유를 깨달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말하면 이곳에 당도하기 전 나의 삶이 불행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건 아니었다. 딱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았고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살았다. 그저 걸음이 마음을 앞서갔을 뿐이다. 떨쳐낸 줄로만 알았던 어두운 이면이 사실은 떨어뜨릴 수 없는 그림자였다는 걸 아버려서. 나는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빛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이곳에 닿았다. 사실 내가 상상하던 지평선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삭막하게 흙먼지만 날리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등 뒤의 그림자는 내리쬐는 햇볕 덕에 더 선명해지기만 했으니까.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땅 위에서 여전히 그림자가 없는 세계를 찾아 유망(流亡)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내 목표의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이 바닥에 누워버렸으니까. 나는 감겨오는 눈을 버티려고 애쓴다. 고개를 돌릴 힘조차 부족해 곁눈으로 겨우 보이는 하늘을 주시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울렁거림은 조금만 참고 하늘을 보고 누울걸.

 조금씩 조금씩 하늘의 푸름이 타들어가며 회색의 재로 변한다. 필사적으로 버티던 눈꺼풀은 털썩 주저앉는다. 귓속을 향해 뛰어들던 바람의 메아리마저 무뎌진다.

 '이제 끝이구나.'

 완전히 감긴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 자신을 잃기 전 마지막 자아를 쥐어짜는 그 순간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림자가 없는 세계. 드디어 그곳에 닿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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