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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Dec 14. 2023

|꿈을 꾸던 아이

 오늘도 꿈을 꾼다. 사하라의 모래 언덕을 넘나드는 꿈. 하지만 덥지 않고 시원했던 기운만 남는 것. 바닷속을 오랫동안 헤엄치는 꿈.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숨이 차지 않는 것. 꿈에서는 언제나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아무런 이질감 없이 실현하고 있는 나였다. 그런 꿈들은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강한 여운을 남기고 떠난다. 정작 그 뒤로 몇 시간만 지나면 큰 줄기 빼고는 모두 잊어버리고 말지만 그 속에 깊이 박힌 뿌리는 나의 새로운 세상이 되어주었다.


 그림을 그렸다. 밝고 화창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그림. 분명 빛이 그려져 있지만 빛나지 않는 색채. 그 오묘한 정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무언가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서둘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끌어내리는 듯한 기운을 받는다. 그림의 밑바닥으로 나는 하염없이 끌려간다.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마치 무한과 같아서 나의 자아로는 결코 그곳까지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밑바닥의 밑. 그 닿을 수 없는 시간에 마음을 빼앗긴다.


 무한, 영겁, 영원, 불멸. 끝이 오지 않는 순간을 살고 싶은 아이의 외침. 모든 맺음은 끝이라는 한 글자로 결정된다. 아이는 밀어냈다. 목적 없는 걸음만으로도 가까워지는 검은빛을. 하지만 그건 끝을 위해 다가가는 모든 이들의 운명론이자 원하는 것을 가지려거든 더욱더 멀어져야만 한다는 모순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안개를 찢고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두 눈이 생긴 이례 처음으로 바라본 현실 너머에는,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검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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