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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Dec 10. 2023

|나의 유서는 가장 첫 줄에 있다.

생각을 지운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지만 삶의 목표가 확고해졌을 때, 그간의 걱정과 고민은 사라진다.


나를 얽매고 있던 어둠이 명쾌해진다. 남은 건 밝은 빛뿐. 검은 세상 속 희미한 빛을 좇던 나를 보내고 밝은 세상 속 희미한 어둠을 좇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역시나 글을 쓰는 것. 애석하게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글을 써야 했다.


사람은 기록을 남긴다. 자신이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혹은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겠지만.


하지만 이건 내가 평소에 쓰던 글과 다르지 않았다.


하얀 여백에 검은 선을 긋는 일. 결국 똑같은 일이다. 나는 곧 이 글을 써야 할 필요성을 잃는다. 


지금까지 썼던 글을 하나로 모아 스테이플러를 찍는다. 허전했던 나의 글이 완성되는 순간이자 증명이었다.


아주아주 작은 구멍. 내가 좇아왔던 밝은 세상 속 희미한 어둠.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만족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겁이 너무 많았다. 너무 무서워서, 다시 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이곳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이 상황이 더 이상 무겁지 않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

무의식 속에만 존재했던, 검은빛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2021년 12월 26일. 언젠가의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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