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들이 Nov 26. 2023

|못의 귀인, 당신께.

일상 이야기

 어제, 눈으로 보기만 하던 시를 누군가의 목소리로 다시 읽었다. 내가 읽은 시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입으로 전하며 청중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바로 와닿는 시를 많이 낭송하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해석에 대한 집중보다도 그 시의 본질에 대해 더 생각했던 것 같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낭송자들의 발성과 전달력에 감탄했고, 시인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사실 김종철 시인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야 조금 찾아본 정도? 그런데 대회 중간 공연 타임에 시인을 소개하며 낭송했던 시에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행사가 끝나고 메모장을 켜보니 핸드폰에 김종철 시인의 시 하나가 저장되어 있었다.


고백성사

                        김종철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곁에 있을 누군가가 언젠가 나의 모진 모습들을 보았을 때, 나를 욕하지 않고 살며시 넘어가 주길 바라는 마음에 저장해 놓았던 시. 이 시의 낭송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다른 이들의 못자국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었나. 혹여나 용기를 내어 맨살을 보여주었던 이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쉽게 넘어가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만큼 나 또한 타인에게 베풀어야 했었는데, 과거의 나를 반성하게 되는 낭송이었다.


 어제 하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가는 날이었다. 부디 이 하루가 언젠가 나의 곁에 있어줄 이의 행복에,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별이 되고 싶은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