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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이 Jan 15. 2024

|흔적

 기억을 넘어 형체를 잃고 사라지는 것. 언젠가 그것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행복한 순간을 위해 사진을 찍고 평범한 하루를 위해 일기를 쓴다. 그중 어떤 것은 쓰고 싶었던 글이 되기도 하며 또 어떤 것은 너를 위한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되고 기록되고 남겨지는 자질구래한 흔적들. 나는 그것을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언젠가 지금의 나를 만든 이유였을 테니까.


 매 순간을 사랑하고 싶다. 어쩌면 현재라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긴 날, 그 찰나에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밤하늘의 작은 별빛만큼은 알아볼 수 있기를. 지나간 과거는 모두 순간이 되었으며 나는 지금도 그때를 살아가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모두 과거였다면 믿겠는가. 그토록 빠르게 잊혀지는 찰나를 나는 너무도 하찮게 넘겨짚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 수많은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까 겁이 난다.


 그것은 두려움이자 나태가 된다. 나는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죄인이다. 시작해보려고 해도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래서 읽기를 반복하고 쓰기를 반복해도 내 안에 남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알려고 한 적은 있었던가.


 나의 존재가 나에게 엉겨 붙어있던 이름들과 함께 사라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 존재의 흔적이 너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삶을 체념하는 순간에도 나는 살고 싶었다. 감히 내가 누군가의 순간 속에서 필연적인 존재이기를 바라면서.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낙담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놓을 수 없었다. 이제는 거짓이 되어버린 내 흔적 속에 네가 있어서. 지금 이 순간 나의 모든 것이 너라고 하더라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간의 감상을 거부하듯 쏟아져 나오는 잔상들. 그것들이 언젠가 내가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숨을 쉬는 일이 불편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라도 흔적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찰나를 지나 행복해질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 나를 거쳐간 이름들에게 의미를 남겨야 한다. 그것이 너와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보게 될 당신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찬사이기도 하다. 


 나의 무능함에 부서져버린 흔적들이 부디 다른 이들의 품에서는 버림받지 않기를. 

 나는 오늘도 눈을 떴고,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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