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군산 2 -커피-
“ 산미가 있는 원두와 고소한 원두 중 어느 것으로 하시겠어요?”
“ 산미 있는 걸로 주세요.”
나는 대체로 새콤한 커피가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소한 커피를 선호한다. 어느 날 늘 가던 카페의 커피 맛이 변했다. 고소한 콩으로 바꾼 것이다. 사장님도 현실 앞에서는 커피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나 보다. 슬펐다. 그 집은 산미 강한 커피가 개성 넘쳐, 밋밋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과 차별화된 작은 가게였기 때문이다.
처음 군산에 와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 중 하나가 카페 문화였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이었던 부산과는 달리 크고 작은 개인 카페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하나같이 로스팅 기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 가게에서 직접 콩을 볶았다. 당연히 가게마다 맛이 다르다. 수입해서 오래된 커피콩들로 내려주는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맛도 다르고 향과 풍미도 달랐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부산에 살 때 나는 ‘스타벅스’, 일명 ‘스벅’의 노예였다. 거의 매일같이 딸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며 그곳에 갔고 거기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눴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좀 더 홀가분하게 커피 마시러 다녔다. 스벅 말고는 딱히 갈만한 카페가 없었다. 그나마 제일 낫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사면 별 하나를 주고 그 별을 모으면 ‘골드카드’를 줬다. 그것을 받고 골드 회원을 유지하기 위해 또 수없이 많은 커피를 마시고 스벅만의 각종 MD를 구입해 댔다. 이 매장에 없으면 다른 매장까지 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정판의 그 뭔가를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
군산에 와서 살다 보니 ‘스벅 노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스벅까지 가는 길에 벌써 카페가 몇 개나 있다. 나는 커피가 마시고 싶었던 것이지 ‘별’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것들을 유지하고 모으기 위해 썼던 시간과 노력이 허무했다. 골드 자격이 사라져도 아쉽지 않았다. 난 그것보다 훨씬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까.
회현에 있는 ‘커피벨트’라는 곳은 편견을 깨 준 카페다. 전혀 카페가 있을 법한 곳은 아니었는데 작은 카페가 길가에 덩그러니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마음대로 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마, 회현에 전원주택 짓고 사는 돈 많은 아줌마가 심심해서 기계 하나 놓고 차린 그저 그런 카페일 거야.’ 열등감 폭발하는 추측을 하며 스쳐 지나갔었다.
어느 날 회현에서 점심 모임을 가진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피를 찾았고 가까이 있던 그곳에 갔다. 그런데 웬걸! 나의 상상과는 180° 다른 모습이었다. 테이블이 있는 실내보다 더 큰 로스팅 작업실과 본격적인 로스팅 기계. 거기서 내뿜어대는 고소한 연기. 일단 커피 맛에 대한 기대가 올라갔다.
거기다 더 놀란 것은 바리스타가 한 잔 한 잔 손으로 내려주는 핸드드립 커피만 있는 카페였던 것이다. 핸드드립이든 에스프레소든 별 상관없었던 일행은 주문부터 했다. 이미 들어온 주문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뭐 우린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기다리며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게 되었다.
핸드드립 커피가 이렇게 복잡한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 줄 사실 몰랐다. 그저 필터로 내려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집은 ‘융드립’이라고 한다. 커피 필터가 ‘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융드립이 고급이라는 이야기는 ‘수요 미식회’에서 봤다.
한쪽에서는 쉴 새 없이 물을 끓여댄다. 그 물을 빈 잔에 부었다 버리고 온도를 재고 커피를 내리고 또 뭔가에 쉴 새 없이 물을 부었다 버리고 온도를 재고. 그런 과정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세심하게 핸드드립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해하면서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 커피가 나왔다. 아주 신 커피였다. 일행들은 싫다고 했다. 나는 맛있었다. 좋았다. 개성 있는 맛. 산미가 풍부해서 신 과일 먹는 느낌. 사실, 커피 원두의 이름이나 지명 따위는 잘 모른다. 외워보려고도 해 보고, 진지하게 바리스타 공부도 해보려고 했지만 머리만 아팠다. ‘나는 그냥 맛있어서 맛있다고 하는 것뿐인데 왜 맛있냐고 물으신 다면…….’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곡식 수탈을 위해 쌀을 모아두던 쌀 창고가 군산에 많았다고 한다. 요즘 그 쌀 창고들을 개조해서 카페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중 ‘미곡 카페’에 대한 이야기. 사실 군산의 오랜 역사나 그 지역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잘 알지 못한다. 미곡 창고가 군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그저 멋진 카페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만 듣고 찾아가 보았다.
주말에 가서 그런 지 주차장에서부터 전쟁이었다. 어렵게 주차하고 실내로 들어섰을 때는 “와우!”. 생각보다 넓고 부분적으로 2층도 있어서 천장이 높아 개방감을 주었다. 옛 창고의 골격을 그대로 살려서 분위기도 좋았다. 꼭 삼례 예술촌에 있는 ‘오스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여기도 물론 로스팅 실이 따로 있었다. 거기다 제빵실까지 따로 갖추고 있어서 진열된 빵에 대한 욕구가 솟아오른다.
이곳은 고소한 커피와 새콤한 커피 중 선택할 수 있었다. 나와 남편은 물론 새콤한 커피로. 커피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고 빵도 맛있는 카페. 식당이나 카페에 굉장히 짠 점수를 주는 남편도 이곳은 마음에 드나 보다. 한 번씩 한산한 시간을 골라 찾아가곤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곧 문 닫을까 봐 조마조마한 카페가 있다. 지곡동 엠코 아파트 앞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 ‘한낱’. 기껏해야 대단한 것이 없이 다만.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이다. 문장 속에서나 가끔 보던 어휘를 따로 떼어 내니 너무나 멋스러운 낱말이 된다. 어쩜 이렇게 예쁜 이름을 지었을까.
조심스레 안을 살펴보면 정말 한낱 하다. 투박한 테이블 몇 개. 조금 불편한 의자 몇 개. 한쪽 벽면에는 나지막하게 책이 꽂혀 있다. 요즘 유행하는 카페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사장님이 출판사 관련 일을 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작명 센스 하며, 꽂혀 있는 책들 하며, 약간 지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장님까지.
여기에도 로스팅 작업실이 따로 있다. 놀랍다. 정말 군산은 ‘카페 한다고 하면 로스팅 기계 정도는 하나씩 돌리지 않나요?’ 하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산미가 있는 커피다. 작은 골목 안에 있는 위치의 문제인 것일까. 사장님이 자주 문을 닫아서인 것일까. 시큼한 커피가 손님들을 모으지 못하는 것일까. 손님이 너무 없다. 아직은 주인장이 고집을 부린다. 일부러 찾아갔는데 임대라고 붙어있으면 너무 허망할 것 같은 집. 오래오래 갔으면 하는 카페 ‘한낱’이다.
군산의 수많은 카페 중 내가 ‘픽’한 세 곳이다. 이 글을 쓸 때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순서대로 소개했다. 이 작은 도시에 수도 없이 많은 카페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오너 바리스타들은 끝없는 도전과 커피에 대한 고집, 아이디어들로 개성 넘치는 카페를 운영하고 유지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대량 생산으로 유통되는 획일화된 커피콩은 쓰고 싶지 않다. 내 카페는 내가 고른 콩을 날짜 계산해서 직접 볶아 내린 커피를 팔고 싶다’는 바리스타의 고집. 군산의 카페가 멋진 이유일 것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카페들로 새로울 것은 없다. 그저 정리해 두고 싶었을 뿐. 앞으로도 나의 카페 탐방은 계속되겠지.
*지금은 회현의 ‘커피벨트’는 예전과 같은 가게가 아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