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물 묻히기 싫었던 아이

by 한낱

나는 형제 많은 집의 셋째 딸이다. 우리 때는 다 그랬겠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를 돕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할머니도 모시고 다섯 명의 아이를 건사했다. 아빠는 지방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만 집에 오셨다. 일명 주말부부. 하.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어떻게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다섯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살았을까. 나라면 그렇게 못 살았겠다 싶은 삶이다. 어릴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 것을 빨리 안 해주면 화가 났고 엄마 일은 엄마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언니는 달랐다. 살갑게 엄마를 많이 도와줬던 기억이 있다. 설거지도 알아서 하고 청소도 했다. 어릴 때 엄마는 작은 언니를 더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투정을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엄마라도 작은 언니가 고마웠고 좋았겠다. 엄마는 늘 작은 언니가 너무 약하게 태어나서 안쓰럽다고 했지만 사실은 작은 언니가 제일 강인했던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도 손에 물 묻히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집안일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중고생 정도 되면 내가 먹은 밥그릇 정도는 설거지를 해 놓아야 할 텐데 그걸 그대로 담가 두었다. 엄마는 어차피 시집가면 평생 할 일이라며 놔두라고 했지만 한 번씩 폭발하면 잔소리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지금부터 손에 물 묻히면 평생 물 묻히고 사는 인생 된대. 나는 나중에 ‘가정부’ 부리고 살 거야.”라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해대며 요리조리 피했다. 나는 내 마음 같지 않은 딸 하나에도 헐크처럼 변한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요즘이다.


대학 다닐 때 교회에서 행사가 있어 청년부원들이 설거지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몇몇이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갑지가 한 오빠가 내게 물었다.


“니, 집에서 설거지 안 하제?”


“왜? 뭐 보고 알 수 있는 건데?”


“젓가락을 누가 하나하나 닦고 있노, 한꺼번에 몇 개씩 쥐고 닦는 거지. 그래가지고 언제 다 닦을래. 설거지 안 해본 거 딱 표난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공부 잘해서 의대 다니는 오빠였는데 그런 공부 잘하는 사람들도 집에서는 설거지도 하고 그러나 보다. 게다가 젓가락은 하나하나 씻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무심코 하는 내 행동에 나의 생활이 보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집안일을 돕지도 않는 이기적인 아이로 보이는 게 부끄러웠다.


정말 그 이후부터였다. 내가 집에서 적극적으로 설거지를 하게 된 것이. 그때 그 오빠는 원래 아주 유쾌한 사람이라 기분 나쁘지 않게 웃으며 던진 말이었는데 나는 그 말에 바뀌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엄마 일을 돕는다는 개념이었고 형제 많은 집이라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하겠지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다들 바빠서 집안일에는 신경 쓰지 않았고 엄마는 혼자 몸과 마음이 늙어갔다. 손에 물 묻히는 것을 싫어한 아이는 자라서 가사도우미를 모시지 못했다. 결국 내 손으로 다 해야 한다. 이럴 거면 그때 엄마를 좀 더 많이 열심히 도와주지 그랬니.


젓가락을 씻을 때마다 커다랗고 빨간 ‘다라이’에 둘러앉아 부드럽게 뼈 때리는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떠오른다. 그저 사실이라 웃을 수밖에 없었던. 아니라고 항변하지 못했던 내가 떠오른다.


돌이켜 보니 내가 설거지를 싫어하는 역사가 꽤 길다. 손에 물 묻히며 살지 않겠다는 아이는 지금 매일매일 손에 물 묻히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전혀 불만스럽지 않다. 매일 내 손으로 내 주방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생활은 복 받은 삶이다. 적어도 내가 관리해야 할 주방이 있고 무언가를 먹었기에 설거지거리도 나온다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그런 주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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