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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낱 Jul 03. 2021

뜨거운 안녕을 위한 준비

비록 황희 정승은 아니지만

   

 큰일 났다. 그렇게 조심조심했는데 들켜버렸다. 우리가 이사 간다는 것을 집이 눈치채버렸다. 아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렇지 않게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사 가면 방은 이렇게 하고 거실은 어떻게 하겠다든지, 새로 사야 할 가전제품이나 가구에 대해서 무신경하게 이야기 나누었다. 집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나 보다.      

 

 갑자기 집안 곳곳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싱크대 수전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욕실에서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보일러 온도 조절계가 말썽이었다. 보일러를 통째로 바꿔야 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온도 조절계에만 문제가 있었다. 온도 조절계를 바꿨다. 그러고 나서는 싱크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전의 어떤 부속이 문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똑같은 현상으로 관리실에 문의했더니 간단하게 해결됐기 때문에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문 업체 번호를 알려주면서 관리실에서는 해결할 수 없고 수전을 갈아야 한다고 했다. 일단 번호를 받아 들고 왔다. 갑자기 더워진 탓에 에어컨 점검도 할 겸 작동시켜보았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에어컨이 아예 켜지지 않았다. 리모컨에 배터리도 충분하고 불도 깜빡이는 것으로 봐서는 전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때부터는 확신이 들었다. 집이 알고 있구나.      

 

 ‘뭐 수전 교체야 간단한 거니까.’ 하는 마음에 미루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잘 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8년 사는 동안 한 번도 싱크대 하수구가 막힌 적이 없는데 갑자기 오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배수구 클리너를 들이붓고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몇 번이나 한꺼번에 쏟아부어도 별로 달라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수전 교체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업체에 전화해서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약속 잡고 기다리고 수리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으로 성가시다.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최대한 미루다가 일을 키운 다음 마지못해 전화한다. 나는 왜 이런 게 이렇게 힘들고 하기 싫은 건지.      

  

 사는 동안은 가족이 편하게 살아야 하고 집을 내놓을 때도 멀쩡한 상태여야 하니까 마음을 굳게 먹고 문제 있는 곳들을 고쳐 줄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넣기 시작했다. 에어컨은 일주일 넘게 기다려야 했고, 하필이면 그때 갑자기 더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일 미세 먼지 알림 앱은 최악의 방독면을 계속해서 보여주었다. 그래도 참고 기다리니 기사님들이 오셔서 해결해 주고 가셨다. 싱크대 수전은 교체했고 뜨거운 물은 문제없이 잘 나왔다. 막힌 곳도 해결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집이 오래되기 시작하니 손 가는 곳이 너무 많아졌다. 지난번에 관리실 직원분이 오셨을 때 그런 불평을 했더니 “집도 사람처럼 아픈 곳 살살 고쳐가면서 살아야 해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까지 집은 단단한 무기물 집합체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치 생명체처럼 여겨야 한다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우리 가족이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집은 단순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냥 광물 덩어리가 아니라 가족의 체취가 스며든 곳이다. 그러고 보니 아래위 옆에 모두 똑같은 모양의 벽과 바닥이 있지만  집집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흐른다. 집주인의 인테리어의 취향 차이만은 확실히 아니다.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온기가 있는 집, 서늘할 정도로 절제된 집, 아이 키우는 집, 나이 든 사람이 사는 집 등 가족 구성원에 따라 집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집에 가족들의 소리나 웃음, 행복, 화, 불안, 등이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황희 정승이 길을 가다 밭을 갈고 있던 농부에게 이렇게 물었다지. “누런 소와 검은 소 중 누가 일을 더 잘하오?” 그러자 농부는 후다닥 달려와 귓속말로 “사실은 누런 소가 더 일을 잘합니다.” “멀리서 큰 소리로 외쳐도 될 것을 왜 굳이 여기까지 달려와서 말하는 거요?” 하고 묻자 이 농부는 사람의 말귀 못 알아듣는 소라고 해도 검은 소가 기분 나쁠 것이기에 달려와 작게 말했다고 대답하고는 다시 일하던 장소로 돌아갔다. 언제 어디서든 말조심하라는 교훈을 주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집에게까지 말조심했어야 할 줄은 몰랐다.     

 

 “우리 집, 요즘 여기저기 너무 고장이 많이 나.”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이사 가는 거 알고 집이 정 떼려고 그러나 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나는 이 집이랑 정 떼기 싫다. 사실 집은 정을 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헤어짐을 슬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떠나는 연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떻게 너를 잊겠니.      

 

 이전까지 남편은 출장이 잦고 일이 너무 많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이 집에 이사 오고부터 가족이 모여 함께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곱 살이던 딸은 이 집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키가 커가는 과정을 주방 한편에 빼곡히 기록해 두었다. 나는 복잡한 도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운전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경단녀로 살던 내가 용기 내어 사회로 발을 내디뎌 볼 수 있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주 하찮은 일을 글로 남겨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집에서다. 나고 자란 고향과 가족, 친구들을 두고 멀리 왔지만 그 공백이 힘겹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좋은 이웃이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생겼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었겠지만 소중한 추억이 가득 담긴 이 집에서 이사 나가는 그날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떠날 준비를 공들여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장 난 것들은 정성껏 고쳐 두고 더러워진 부분이 있다면 깨끗이 하려고 한다. 이별의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고 싶지 않다. 가족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던 우리 집이 서운해하지 않도록. 이사 가는 날 나만의 다짐이 있다. BTS의 ‘이사’라는 노래를 들으며 텅 빈 집을 한 번 돌아보려고 한다. 울고 웃던 시간들에 작별 인사를 해야지. 고마웠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주방의 전구 하나가 깜빡거린다. 내일 전구를 새로 갈아 끼우며 우리가 떠나는 것을 온몸으로 아쉬워하는 집을 잘 어루만져 주어야지. 괜찮아. 우린 너를 잊지 못해. 잊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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