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으로 떠나는 여행

걷기와 방랑벽

by 나디아

순조롭기만 한 여행보다는 도전적인 것을 즐기는 편이라 a부터 z까지 치밀하게 계획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디를 갈 것인가', '어디서 잘 것인가'와 같은 큰 틀만 구상해두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추억을 쌓는 여행이 좋다.


나는 봄날의 산과 숲을 느끼고 싶었고 걷고 싶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수 많은 오르내림 끝에 마주한 정상에서 끝내주는 기분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등산,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며 몸과 마음 모두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장거리 트레킹, 휴양림에 안에서 자연과 함께 힐링하며 먹고 마시는 식도락 캠핑. 무엇을 할까.


둘레길 걸으면 어떨까. 우리 북한산둘레길 걸었을 때 좋았잖아. 네 생각은 어때. 찾아보니까 국립공원 둘레길이 또 있더라구. 지리산은 좀 길고 치악산! 10일 연휴에 11코스라 살짝 타이트할 수 있지만 컨디션에 따라 하루에 두 구간 걸을 수 있으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아니지, 해볼만 한게 아니지. 우리는 하지. 해내지 반드시.


틈만나면 떠나고 싶어하는 방랑벽을 이번에도 나는 이기지 못했다. 식당은 이쯤에 있고 민박집은 저쯤에 있으니까 그게 나올 때까지 걸으면 된다는 계획 같지도 않은 나의 장단에 늘 맞춰주(려 노력하)는 너와 함께, 140km 치악산둘레길 완보를 목표로 한 트레킹에 도전하게 되었다.


예고없이 고통받는 발이 시위라도 하는 듯이 생성되는 물집도, 급격하게 늘어난 운동량으로 인한 아킬레스건 부종도, 약국이 부재한 시골마을에서는 큰 고민거리였다. 끝없는 오르막과 땡볕 임도길 26km 걸어 겨우 도착한 민박집이 운영하지 않을 때, 소식 없던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고 몸을 피할 곳이 없을 때와 같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마주할 때면, 포기라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을 기어코 꺼내야만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문득 치악산둘레길 리뷰를 서치하다 보았던 한 문장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치악산둘레길은 쉬운 코스가 없습니다.' 그렇다. 치악산둘레길의 난이도는 해발 700m의 산을 8번 오르내리는 정도다. 치악산고행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안다. 아쉬움이나 후회 따위 남기고 싶지 않은 악바리라는 것을.


결국 하루 평균 20km를 걸으며 7일만에 (1-2-2-1-2-2-1) 악으로 깡으로 완보 해내는 성적을 달성했다. 위기의 순간마다 마치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기다려준 사람인 것만 같은 귀인들을 만났고,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일주일이었다.


언제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 동안 참 많은 생각들에 잠기곤 했다. 초록, 나무, 들풀, 야생화, 새들의 지저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비 내린 후의 흙내음, 바스락거리는 낙엽들 그리고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을 내 안에 잔뜩 담아올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산과 숲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부상의 아픔과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해내는 근성이 너와 나 모두에게 있음이 고마웠던 여행이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했고 함께였기에 행복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만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갈 다음 여정이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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