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어야 맺어지는 것들
세상의 많은 일들 중 인연(因緣)만큼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와 만남은 시기와 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시점을 우리는 '시절인연'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경험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속했던 집단을 선택 된 한 명을 괴롭히면서 친밀해지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마음을 나누었다 생각했던 이들의 외면을 겪으며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언제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시절을 지나면서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고 혼자서도 잘 지내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했따. 타인으로부터 받을 상처에서 자유롭기 위해, 이해받지 못할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지켰다. 그러는 동안 내 안에 벽 같은 것이 조용히 자라났다.
부서진 우정이 쌓아올린 마음 속 벽돌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여러 모양의 사랑 덕분이었다. 연애를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내가 지나고 있던 계절을 따라 어떤 인연은 빠르게 다가왔고 어떤 인연은 조용히 스쳐갔다. 그 만남들은 그 시절의 내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관계였고, 그 사람들 역시 그때의 나와 마주칠 수 있었던 조건 속에 있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랑은 그 시절의 나에게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지만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달랐다.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 속에서 그와 나는 함께 있으면서도 서서히 멀어졌다. 우리는 이혼이라는 방식으로 끝을 맺었지만 그 역시 받아들여야 할 '시절의 끝'이었다. 인생은 늘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모든 인연은 때가 있어야 성립된다. 어떤 만남은 늦어서 이루어지지 않고, 어떤 사랑은 너무 일러서 지나가고 만다. 인연은 억지로 이어붙일 수 없다. 흐름을 거스르려 할 때 고통이 생기고 자연스러운 이별조차 상처로 남게 된다. 삶에 오고가는 사람들을 그저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 덜 무거워진다.
더 이상 어떤 인연을 영원함이나 운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곁에 다가와 머물고 또 떠나가는 인연들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배워가는게 인생인 것 같다. 그러므로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함과 관계없이 그저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그들이 만들어낸 '시절의 인연'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