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는 그 사람, 적어도 내 인생에서는 그랬다. 언젠가 나는 그 사람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 골몰해 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떻게 다 아는걸까. 아무리 고심해봐도 어린 마음으로는 그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경필 쓰기나 백일장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며 권유했고, 웅변대회가 있다는 소식에는 원고를 직접 써주며 대회에 참여하면 어떨지 나의 의견을 묻곤 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분명 Super E 성향이었을 어렸던 나는 겁을 모르는 아이였고(물론 지금도 없는 편이지만) 그 사람의 말에 따라 도전한 것들 모두 기분 좋은 성과를 거두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잘하는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내가 절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척척 알아내었다. 특히 수학 공부 같은 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내 미래의 수포자 모습을 미리 본 것이 분명하다. 수학 시험에서 늘 상상 이상의 점수(물론 낮은 점수)를 받아오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그럼 그렇지'하며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응원하고 때로는 반대하였다. 8년간 공들인 현대무용을 입시 1달 전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때려치웠을 때도 그 사람은 그저 나의 다른 진로를 함께 찾아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주었다. 국어교사인 그 사람을 따라 도서관을 함께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어영부영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지만, 입학 1년 만에 핵노잼이라며 돌연 휴학을 하였다. '책'과 '읽기'와 '도서관의 분위기' 따위를 좋아한다는 이유가 학과 공부를 좋아하게 될 이유는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학생의 신분으로 어느 소극단 공연 무대를 오른 후에는 '이 길이 딱 내 길이니 자퇴하겠다' 주장하는 내게 그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쓸 일이 있을테니 졸업만은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나와 그 사람의 의견을 좁혀지지 않은 채 팽팽하게 맞서 있었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는 건 내 쪽이었다.
지루했던 학과 생활이 끝나고 2급 정사서 자격증을 받았지만, 도서관 취업은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내가 졸업 후 직장 방랑자가 되었을 대도 그 사람은 그저 나를 격려하였다. 공항지상직, 학원영업, 바리스카, 웨딩플래너를 거쳐 매장관리직까지 여러 분야를 경험하고 다녔지만 이렇다 할 적성을 찾지 못했고, '이번엔 어떤 일을 해볼까' 생각하며 또다시 이직을 궁리하는 나는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구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당당히 이렇게 말했다. "거봐! 자격증 그거 하나도 쓸모 없지! 괜한 등록금만 날렸다니까! 아까워 죽겠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놀랍게도 그 사람의 말처럼 졸업장이 빛을 발하는 때가 찾아왔다. 내 나이 딱 서른이 되던 그 해, 인생 처음 도서관 사서직에 취업하게 된 것이다. 내 이름 앞에 '사서'라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박힌 명함을 그 사람에게 전할 때의 감회는 정말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명절 날, 우리는 둥글게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 받았고 취기가 살짝 오른 나는 그 사람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조금 취했으니 아마 게슴츠레한 눈이었을지도)물었다. "아니, 내 앞날이 훤히 보이는거야 뭐야? 어떻게 다 아는거냐고!" 그 사람은 내 물음을 듣고 그저 옅은 미소를 띄울 뿐이었다. "아니, 왜 대답 안해주냐고!" 어른이 되어서도 투정 부리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은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어린 마음이 몰랐던 그 정답은 사랑. 누군가를 온전히 아는 것은 오직 사랑만이 할 수 있는 일. 나에 대한 것이면 무엇이든 예측할 수 있었던 그 신비한 능력, 그건 나를 향한 그 사람의 사랑이었다.
찡해진 마음이 코 끝까지 붉게 물들인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