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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Mar 25. 2016

특별한 일상

 NO.1

늘 그랬다.

아무 표정 없이 액정 속 친구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소식은 어쩜 그렇게 특별해보이는지, 세상에 나를 빼고는 다 즐거운 것 같다는 피해망상에 빠져도 나를 탓할 순 없을거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SNS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어떤 글이나 사진도 올리기 쉽지 않다. 아마도 하는 일이 SNS나 온라인과 관계된 일이라 더 그런건 아닐까? 그냥 그런 핑계를 대보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일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내가 관심이 없다는 게 맞는 말 같다.


특별한 일상을 꿈꿨다.

무표정하게 바라봤지만 실상은 부러웠고, 귀찮다고 하면서도 늘 갈망했다. 시기와 질투를 무표정 속에 감춰두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걸 시도하거나, 나를 꾸미는데 열중하지도 않았다. 늘 앞에 있는 삶에 익숙하게 반응했고, 성실함만이 내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며 무기라고 생각했다. 특별해지기 위해선 늘 스스로에게 성실하면 된다고 되네이면서 그냥 그렇게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런 내 삶에 후회가 쌓여간다.


서른이 되었고, 친구들은 하나둘 삶에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청첩장을 보내는 친구들이나 창업을 한다는 사람들. 이민을 간다는 선임이나 눈 앞의 꿈을 바꾼 친구까지. 고개를 돌리면 옆에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눈앞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걸어가고 있다. 마주보며 웃을 수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는데, 뒤통수만 바라보게 된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머물자 화가 났다. 화내야 하는 대상이 뚜렷해서 또 다시 화가났다. 늘 나를 괜찮다고 위로한 것도 나였는데, 화를 받아야 하는 대상도 나였다. 늘 그렇지, 늘 비슷하지 하면서 되뇌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사람이 가득한 출근길 버스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건 삶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퇴근하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서 느끼는 행복이야 말로 인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절이며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정했다. 그런 삶에 후회란 있을 수 없었다. 이미 다 정해놓은 답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만 치면 되는 삶이니까. 하지만 택하지 않은 길 역시 아주 소중한 삶이며, 눈 앞에 놓여있으면서도 무엇인지 모르는 그 삶이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함께 무력감을 느끼며 로또 당첨을 기원하는 희희덕거림을 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상은 늘 그러했는데, 나는 늘 그 일상이 더 특별해지길 바랬다. 원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도, 그것이 특별하지 않다고 탓해야 하는 대상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내 나이의 친구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 않으면서도 위안을 삼았다. 특별한 상상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스스로 선택한 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특별하다고 수없이 되뇌여놓고, 지나고 나서는 무의미함이 가득했다고 되뇌였다. 특별했던 일상은 그저 일상이었을 뿐이다. 마음 속에 빚처럼 남아있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여기서 시작된다. 참 좋았던 영화다.

삶이라는 옷이 나보다 무거워지는 서른이라는 시기가 지났다.  내 삶도 아주 먼 훗날, 참 좋았던 삶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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