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가장 좋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같이 손 잡고 산책하는 것.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결혼 전 동생들과 살던 집은 좁았고, 소파가 없었다. 결혼을 하면서 장모님이 사주신 넓은 소파는 눕기도 하고 뒹굴거리기도 하면서 핸드폰도 보고 TV도 보는 공간이 됐다. 결혼 후 소파가 생겼으니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부인과 함께 소파에서 각자의 일을 적당히 하고 있다는 건 꽤 큰 안도감을 준다.
적당히 서로의 살을 맞대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떤 기대나 공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그런 사이는 소파위에서 일어난다. 소파가 침대만큼 넓진 않지만 등을 기댈 수 있고, 팔을 기댈 수 있고, 서로를 기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주말에 밖에 나가지 않고 소파에서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더라도, 같이 다리를 겹치고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상태에서 TV소리와 핸드폰 화면이 중첩되는 그 시간이 주는 안정감이야 말로 결혼의 이유일 수 있다고 본다. 집의 중심에서 서로를 적당히 구속하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결혼의 이유라면, 나는 꽤 할만한 이유라고 추천한다.
로맨스를 좋아하는데, 가끔 미치도록 설레는 로맨스들이 있다. 소울메이트나 연애의 발견, 최근 보게된 도시남녀의 사랑법 같은 드라마들은 꽤 설레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보는 드라마다. 내가 남자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여자주인공이 내게 오지도 않지만, 약간의 감정이입과 상상력을 더하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나 소파위에서 부부가 대화를 하면서 본다면 더욱 그렇다. 대화는 주로 이렇다. '여자는 그래? 남자는? 이럴 땐? 여보도 경험이 있어? 등등'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다.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삶은 원망하거나 아쉬워하는 대화도 아니다. 그냥 소파에서 서로 기대서 각자의 일을 할 때 느끼는 안정감처럼, 각자의 상상을 하더라도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있다. 부부가 다 같을 수는 없으니까, 아니 어차피 다른 사람들 둘이 붙어서 사는 걸 부부라고 하니까, 서로의 생각이 다른 지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각자의 상상의 영역마저 '그래봤자 너는 내 옆이고, 이 소파위에서 나와 함께 몸을 맞대고 있단다' 하는 마음이 주는 안정감은 결혼 생활에서 알게된 큰 위안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몸이 저 멀리 가지 않을거라는 안정감. 우리의 대화가 소파에서 시작해서 소파에서 끝날거라는 잠정적인 결론. 소파의 크기가 크면 좋겠지만, 소파와 상관 없이 그 위에서 오가는 감정의 크기는 커질 수 있다는 희망.
결혼 후에 가장 좋은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같이 산책하는게 1순위이긴 하지만, 소파는 또 다른 영역의 좋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