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싫어하는 부인과 말을 사랑하는 남편
부인은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색으로 치면 노란색에 가까웠는데 밝고 선명한 노랑보다는 진하고 어두운 노랑에 가까웠다. 그녀에게 말은 쓸데없이 색을 잃게 하는 빛과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와 말을 하고 온 나은 그 말들을 다 게워내야 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말하지 말라고 화도 내보기도 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등을 토닥이기도 했지만, 그러고 난 밤이면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만 했다. 다음날도 부인은 말을 먹고 다시 게워내길 반복했다.
그녀가 언제부터 말을 싫어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연구들이 있었다. 부인 연구로 박사논문을 발표한 그녀의 오빠는 늘 방에 들어가 아무 말 도하지 않는 그녀를 30년 넘게 관찰하면서 쓴 논문들을 훗날 그녀의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대부분의 박사들이 그러하듯 연구를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크다는 것을 더 많이 알아버린 오빠 박사는 그녀의 남편에게 논문을 건네며 자신의 영역의 한계를 고백했다. 그때의 눈빛을 남편은 애써 무시했지만 게워낸 말들 속에서 오빠 박사의 그 눈빛이 떠오를 때가 가끔 있음을 훗날 고백하기도 했다. 그 박사의 스승으로 알려진 그녀의 엄마는 늘 웃으며 남편을 대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며 부인 연구의 고통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훗날 수많은 말보다 한 끼의 식사에서 받은 위로가 컸음을 또 한 번 고백했다.
말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부인과 그녀의 남편에게 부부생활을 위협할 만한 요소는 전혀 아니었다. 말보다 더 많은 행동들과 말을 대신한 웃음과 눈빛과 때로는 화를 냄으로써 그들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 곧 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부는 많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주변인들은 부인이나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결혼했는지에 대해 늘 궁금해했다. 특히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라든가 어제 부부싸움을 하고 온 사람들은 말이 없음에도 잘 살아가는 이 부부의 방법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투로 물어보곤 했다. 부인이나 남편은 그들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말들로 설명하고 얘기하고 위로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말들을 들은 그들은 훗날 고백하길, 수많은 말보다 집에 돌아가 자신의 배우자와 손을 맞잡는 것으로 그 위로를 다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많은 말들을 하고 온날이면 부인은 또 집에 돌아와 자신이 하고 들은 말들을 게워냈다. 때로는 그 옆에 그녀의 남편도 있었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은 그녀의 남편을 많이 사랑했는데 역시 그녀답게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자신이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했고, 가장 맛있던 커피를 마시게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먹었던 갈비가, 더운 날 마셨던 커피의 시큼한 그 향이 남편에게 닿기를 바랐다. 그녀의 의도대로 갈비와 커피는 남편에게 닿았지만, 그녀도 모르는 의도 -맛있던 기억과 커피를 마시게 된 경위와 유난히 끈적였던 그날의 더위 속에서 남긴 강렬한 향의 기억들을 전달하고자 했던 의도 - 는 갈비의 맛이나 커피의 향보다는 조금 늦게 닿았다. 그런 날이 있던 밤이면 남편은 또다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곤 했지만, 게워내진 않았다.
부인은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남편이 말을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부인을 말보다는 사랑했다. 그러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은 늘 밤늦게 도착했고, 남편은 자책했다. 그런 날이면 부인은 낮에 오갔던 말들을 밤에 게워냈고, 남편은 게워내진 않았다. 때로는 말을 게워내지 못하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 사실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낮은 매번 왔지만 밤도 따라서 반복됐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었다. 그리 사랑하지 않는 세상이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부인이 걷는 곳마다 그녀에겐 말이 따라왔다. 부인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기에 늘 관심을 받았다. 부인의 작고 아담한 체형과 귀여운 외모는 성별을 떠나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그녀의 대중적이지만 소박한 취향은 눈길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한껏 말을 들어온 날은 역시나 부인은 집에 와서 그 말들을 게워내는 것이었다.
남편은 말을 아주 사랑했다. 말이 이어주는 휘황찬란함이 세상을 밝게 비춘다고 생각하는 ‘말 추종자’였다. 말과 말이 이어준 선은 그에게 규범이었고 신호였다. 말을 사랑하지 않는, 말을 싫어하는 부인을 사랑하게 된 일에 대해서도, 수많은 말로 꺼냈다. 부인이 게워낸 말 틈에서 그 사랑 고백을 발견하는 날은 잠이 들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부인 앞에서 말로 조잘조잘 떠드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결혼생활 4년 만에 알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많이 바뀌었다. 남편은 자신의 말을 말없이 듣고 있는 부인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싫어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해버린 것이다. 부부관계가 꼭 같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이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부부는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부인은 여전히 말을 싫어했다. 남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은 여전히 밖에서 나눈 말들을 집에 와서 게워냈지만 남편은 더 이상 그 옆에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줄 필요가 없었다. 남편은 4년간 채운 부부의 시간 동안 알게 되었다. 그녀가 게워냈다고 생각했던 말들. 그러니까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밖에서 누군가와 만난 이야기와 먹은 이야기와 나눈 말들을 꺼내는 일. 그것은 사실 말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온 힘을 다해 꺼내는 것이었다는 걸 안다. 그녀가 꺼내는 말들이 말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등 뒤에 서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말을 싫어하는 부인과 말을 좋아하는 남편은 4년이 지나서야 그렇게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