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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Aug 23. 2021

슬기롭지 못한 "재택 근무 생활"

사무실 판타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4단계로 유지되고 있다. 조금만 참자, 괜찮아진다 하고 살짝 안일해진 그 마음가짐을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파고 들더니 어느 순간 2천명을 넘었었다. 다시 조금씩 잡혀가는 모양새인데, 빨리 이 고난이 끝났으면 좋겠다.


사무실 풍경

회사에서도 코로나 대책에 대해새 처음엔 우왕좌왕 했다. 코로나가 심해짐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결정하기 유독 어려워했다. 확진자가 나온 층은 매번 회사 돈으로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다른 회사들이 일주일, 이주일을 나눠서 재택을 하고, 또 어떤 곳은 1년 이상 재택을 이어나가고 있는 순간에도 나의 회사는 주 3일 정도의 재택을 유지하고 있다. 그룹을 A와 B로 나눠서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보고를 받는 리더들은 A에도 B에도 속하지 않아 사실상 무의미하다. 출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출근을 하되,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키라는 말을 한다. 재택으로 나눠서 근무를 하지만 대면 보고가 아니면 보고가 잘 되진 않는다. 여전히 빠른 공지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건 기대할 수 없다. 어디선가 확진자 소식이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블라인드나 다른 동료들에게 소식을 구해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물론 코로나 초기에 비하면 많은 정책들이 안정됐다. 임산부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재택근무를 원하는 만큼은 신청하라는 공지가 있고, 재택근무 외에도 출퇴근 시간을 앞뒤로 1시간씩 움직여서 업무 시간을 줄이고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더이상 혼란하지 않게 대처하는 법을 직원들은 알고 있다. 직원들도 유독 조심을 많이 해서인지 확진자가 타 회사에 대비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다. 그래서 현재의 업무 환경에 대해서 불만과 만족이 동시에 터져나온다. 익숙해진 대처들에 대해 몸은 적응을 하고 있는데, 업무를 하는 방식이나 업무 내용이 변한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 출근을 해서 처리할 일과 재택을 해서 처리할 일을 최대한 나누고 있고, 출근일을 정할 때에도 출근해서만 처리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보고 업무, 배송 업무- 들을 최대한 처리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반대로 재택을 할 때에는 해당 업무들에 대해서는 2순위로 밀어놓는 경우가 생긴다.


개인의 풍경

그러니까 사실 우리 모두 적응 중인거다. 집중할 수 있을 시간을 자발적으로 구분하고, 회사가 주는 혜택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업무를 하는 역량에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면 보고를 받고, 블라인드에서는 같이 밥을 먹거나 출퇴근 시간에 대한 압박을 하는 리더들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참 이상하다. 위에서 길게 언급할 정도로 사실 회사는, 코로나를 대처하는 부서는 최선을 다해서 다양한 제도들을 마련하고 조심하라고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회사를 나와야 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업무의 압박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경우들은 그저 개인의 경험으로 쌓일 뿐이다. 업무의 관성은 코로나와 역방향으로 끊임없이 향하고자 한다. 왜일까.


사실 출근에 대한 중요성을 얘기하는 회사들은 수도 없이 많다. 페이스북이나 구글도 출근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의미를 부여한다. 재택과 화상미팅을 아무리 대안이라고 떠들어도 소비재를 직접 판매하거나 유통하는 곳들. 매장을 가진 회사들이 모두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완벽한 제도는 없기에 늘 부족한 부분들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러니 나의 회사 역시 출근이라는 관성, 보고라는 관성, 업무 시간이라는 관성을 크게 느끼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왜일까.


개인에게 부여된 업무량이 개인의 업무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우린 이걸 ROI 라고 말하기도 한다. 회사는 직원에게 일한 만큼 돈을 주는 것이 (보통은)아니다. 돈을 고정적으로 주는 대신, 그 이상의 일을 하기 위해 인력을 감축하고 업무량을 몰아준다. 개인의 역량이 높아질 수록 업무는 몰리고, 깔때기의 아래로 내려갈 수록 밀어내기 버겁다. 심지어 개인에게 몰린 일의 양이 중요하지도 않다. 그런 깔때기가 여기저기 많으니까.


병목현상은 보고에도 있다. 결국 위로 올라갈 수록 책임감 만큼이나 결정할 권한도 많아지고, 결정에 대한 손을 많이 댈수록(왜냐하면 많이 받는 만큼 많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긴다. 코로나 이전에는 야근을 할 수도 있고, 대면 보고를 무한히 기다리는 것처럼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집에서 보고를 할 수 없으니 보고할 수 있는 날을 정해 출근일을 정한다. 보통 보고는 한 사람이 가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한 명에게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일은 항상 밀릴 수 밖에 없다. 회사에는 분명 결재시스템이 존재하지만, 리더 입장에서 사전 설명을 듣지 못한 품의에 결재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왜 리더는 사전 설명을 들어야만 할까. 왜 리더는 모든 결정 권한을 가져야 할까. 왜 숫자는 모아져야 하고, 의미를 설명해야 할까.


상상의 풍경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들지만, 조금 더 현명하게 이 시기를 버티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지 상상해본다. 회사에는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여러명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이 업무에 대해 공동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원을 여럿 뽑아놓은 이유는 부재시 생기는 위험을 줄이고, 업무량을 나누면서 동시에 인재를 키워내기 위함이다. ROI는 낮아지지만 회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체면에 생각하면 개인의 업무량을 여럿이 나눠 가지는 편이 더욱 안정적일거라는 믿음이 있다. 물론 법도 믿어주면 좋다. 순환 재택은 이들이 같은 업무를 한다는 믿음을 더 키워줬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무를 하고, 사무실에서 해야 하는 업무와 집에서 하는 업무들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의 부재가 팀에 손상을 끼칠 걱정보다는 나의 부재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예감이 개인을 더 옥죈다. 어쨌든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위로 올라간다.


리더는 자신의 권한을 끊임없이 체크받는다. 당신이 자의적으로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부분들과 그 위의 리더에게 사전보고 사후보고 할 내용들에 대해 끊임없이 리더들끼리 체크한다.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만두라는 상투적인 얘기가 아니다.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것도 업무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다. 일이 어디선가 꾹꾹 막혀있다면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지 한 눈에 보인다.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곳을 찾으면 그만이다. 모든 권한이 위로 향하던 것과는 다르다.


대면 보고를 해야 하는 건 설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리더가 해당 업무를 디테일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면 보고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리더가 실무에 대해 담당자만큼이나 잘 알고 있고, 담당자에 대한 믿음을 주고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업무의 리더일 뿐이다. 그리고 리더가 하는 일, 업무를 하는 방식, 업무의 권한들 역시 끊임없이 체크를 받는다. 그걸 체크하는 부서들이 회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윤활류라는데 모두가 동의한다. 


슬기롭지 못한 '재택 근무 생활'

코로나로 인해 조금 더 나은 사무실이 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하며, 동료들과 이런 상상을 해봤다. 지금의 재택 근무 환경과 하나씩 쌓여온 다양한 정책들을 고민하는 분들께 감사하다. 내 개인의 경험이기에 누구보다는 훨씬 나은 업무 환경일 거고, 또 누군가에 비하면 아쉬운 업무 환경일 것이다. 


업무를 하는 방식에 회사 전체적으로 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지, 현재의 업무 환경이 누군가와 자리를 교체하면서 일할 여유는 있는건지, 업무가 개인에게 몰린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인지, 기업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당연히 '매출'이지만 그렇기에 기업이 져야 하는 사회적 책무 중의 하나가 '풍부한 고용'인 것은 아닐지, 리더의 자질이 실무는 아닐지. 회사에서 권한의 재분배에 대해 논의해야 할 시점을 아닐지. 하필 우연히 본 글들이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저런 생각이 불만으로 이어지다보니 이런 글도 써봤다. 이런 슬기롭지 못한 '재택 근무 생활'이 어서 빨리 끝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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