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21년 4월 12일
그림자를 상상하면 늘 빛의 반대편으로 짙게 나 있는 하나의 그림자를 떠올린다. 그래서 실내라거나, 밤 야외에서 마주하는 여러 갈래의 그림자. 하나의 피사체로부터 뻗어 나오는 여러 갈래의 서로 다른 색의 그림자를 마주하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절대적인 하나의 사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던 사람에게 다양한 구도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게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닮았다. 과거와 현실과 진실, 미래와 상상이라는 여러 갈래의 그림자가 비현실처럼 섞여 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무언가 비현실적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 같다가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가도 다시금 현실의 사실들을 무심히 꺼내놓는다. 짧지 않은 문장들과 짧은 시간의 흐름이 교차해서 내가 지금 읽는 부분이 어느 시점인지를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에는 그런 구분들은 그저 내가 평소 가지고 있는 나의 편리한 부분, 그러니까 책을 읽던 습관들에 기인한 것일 뿐이라는 걸 알았다.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이 내가 읽던 방식과 달라 생긴 불편함에 대해 작가를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취사선택의 주체는 나였으니까.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상의 단편들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그게 곧 미래의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낙담할 필요가 없다. 미래에는 또 다른 과거를,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내가 있을 것이었다. 그걸 오밀조밀하게 들여다보는 소설을 읽고 나서는 내 삶에 대해 조금은 부지런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삶에 있는 게으름에서 벗어나, 내 삶을 반추하고 고민하고 상상하면서 사는 나에게 지치지 말라고 해주고 싶었다. 소설 속에서 도쿄 코인을 여러 방향에서 쳐보다보고 있는 인물처럼 나도 그렇게 무언가를 주의 깊게 계속해서 반복해서 바라보고 싶었다.
일상의 루틴을 다양한 각도로 적어낸다는 것도 큰 용기였다. 어제의 내가 원한 삶이 지금 아니라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원했던 나와 그걸 갖지 못한 내가 충돌할 수 있고 그걸로 인해 아플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것을 무의미하지 않다고 들여다볼 용기. 같은 것을 좋아할 수 있는 따스함. 그리고 그 따스함으로 인해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는 반복되는 삶이 수레바퀴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82년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 이건만, 책을 다 읽었음에도 나는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단편적인 사진처럼 생긴 문장들을 봤고, 그 사진이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사진에 찍혀가는 과정을 봤을 뿐이다. 사진 한 장이 담은 의미와 이어진 사진들의 가진 의미가 꼭 같을 필요는 없다. 노래로 비유해보면 어떨까? 가수를 악기로 생각하는 작곡가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 짜임새가 단단해서 어느새 설득되어 버린다. 그런 앨범은 가수가 모두 다름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건을 글의 중요한 주제가 아니라 단순한 사건으로(있었던 일로) 두고, 다른 인물들과 버무렸을 때 어느 순간 사건이 아닌 인물에 집중하게 되고, 또 인물을 넘어서서 단단한 삶 그 자체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디선가 이름을 들은 이 작가의 책을 도서관에서 2권 빌려왔다. 그저 이름만 보고 검색해서 빌려온 책들이다. 그중 한 권을 읽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지만 땀이 좀 난 기분이 드는 산책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