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도모 Oct 04. 2021

김민섭 <훈의 시대>

저자: 김민섭 / 출판: 와이즈베리 / 발매: 2018.12.03.

작가 김민섭을 읽는다.


라고 썼지만, 김민섭 작가의 데뷔작을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내가 대학원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부조리에 대한 항의로 가득차 있을 것 같은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를 선뜻 손에 들기는 무서웠다. 해서 그의 책을 천천히 읽고 있다. 어찌하다보니 역순. 이렇게 읽는 것도 책을 읽는 맛이 난다.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훈의 시대>는 '훈'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발현이 되는지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학교, 회사, 개인(집)이 가진 훈들을 오밀조밀하게 분석해간다. 여성(그리고 남성)에게 주는 억압이 어떻게 학교의 급훈으로 상징 되어지는지, 회사에서 사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그 목표는 무엇인지, 박사마을이라는 단어들이 보여주는 주택에서의 언어의 가치들을 고발하고자 하는 글이다. 읽으면서 한 편의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찌보면 단어에 집착하는 작가의 근본(?)이 십분 발현된 책이 아닐까 싶었다. 언어의 기록이라는 출판사의 마케팅은 좀 큰 것 같고, 그보다는 언어에 집착한 사람이 봐왔던 세상을 우리 앞에 하나씩 펼쳐준 것 같았다. 미시사에 가까운 느낌. 


단어가 주는 상징은 뜯어보면 정말 재미있다. 남성학교의 교훈 대비 여성학교 교훈에만 많은 단어들. 그 단어들을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키워내고 싶은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여성 학생들과, 그걸 지었을 지도자 사이의 갭이 얼마나 큰지, 최근에 그 갭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나열해준다. 들여다보는 것이야 말로 책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지, 읽으면서 수긍했다.


김민섭 작가의 책들을 읽다보면 책을 쓰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 같은 친밀함이 있다. 글의 내용은 내가 감히 친숙하게 느낄만한 것이 아닌데, 글 몇자로 축약된 과정들 속에서 이 글들을 함께 써가는 느낌이 있다. 얼마나 많은 준비를 오래도록 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퇴고의 과정을 거쳤는지는 없어서 다행이다. 아마 김민섭 작가가 글을 쓰는 퇴고의 시간을 글로 쓴다면 독자들은 퇴고의 과정마저 친숙하게 내 것인양 느낄 것이다. 독자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런 글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훈의 시대>을 읽으면서 작가는 뭔가 대학원까지 잡고 있던 하나의 끈을 맺음하기 위한 글을 쓴게 아닐까 라고 나는 상상했다. 언어에 대한 탐구, 다른 말로 하면 집착. 그걸 기록으로 하나하나 풀어내는 과정들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의문이나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맺음말을 내고 싶은 기록인 것 같았다. 여성에 대해, 직장에 대해, 개인에 대해 구분을 지었지만 결국은 단어에서 시작하는 삶을 반추하는 경험들을 온전히 쏟아부운 것 같았다. 잘 읽힌 글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훈의 시대> 다음 글은 무엇이었을지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이미 읽은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였다. 확실히 글에서 힘이 빠지면서 더 읽기 쉬운 글이 되었다. 김민섭 작가님은 시간이 갈수록 독자를 자신의 옆자리에 더 가까이 앉히는 힘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민섭 <아무튼, 망원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