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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Sep 28. 2021

무슨 차를 사고 싶어?

소비 시리즈 #1 <나는 과연 차를 살 수 있을까>

신혼이 오기 전.

그러니까 

결혼을 약속하고 

집을 구하고 

혼수를 보러 다니던 시절.

장모님을 모시고 지금의 아내와 셋이 가전매장에 찾아갔었다.

나는 내가 꽤 현명하다고 소위 자뻑 하는 스타일인데

적어도 그런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선택권은 없다. 

어차피 디자인도 기능도 내 선택은 중요치 않다.

나는 그저 편안한 쇼핑을 위해 적당한 거리에서 (걸리적거리지 않으면서 찾으면 바로 보이는)

내 눈에 들어오는 가전들을 구경할 뿐이었다. 

간혹 내게도 질문이 들어왔지만

"응" "좋아" "그것도 좋네" "아 그건 생각 못했네" 정도의 대답으로 돌려막으면 그만이었다.


한참을 tv에 대해 장모님과 얘기를 나누던 아내가

짐짓 아무렇지 않게 툭하고 물었다. "TV는 몇 인치가 좋아?"

거기서도 준비된 대답을 했어야 했는데

이 죽일놈의 반골 성향. 극적인 성향.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 성향이 

대답을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으로 해버렸다.

"큰 거"

        

아내는 아직도 그 말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원망하는 것은 아니고 뒤에 꼭 "으이그~ 남자들이란" 뭐 이런 수식어를 붙여서.

그렇지만 어쩌란 말인가. TV는 큰 것인 것을. 

큰 TV는 진리다. 왜인지는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TV는 할 수 있다면 큰걸 사야 한다'는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민들레 홀씨라면 불어온 바람을 탓할 수라도 있겠지만 

TV는 큰 게 좋다는 생각은 나도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그렇게 어디서 태어난 것인지 모르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됐다. 


나는 차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휠이 크면 뭐가 좋은지

남들이 뭘 타고 다니는지

요새 나온 차에는 어떤 기능이 있는지.

지금 차가 워낙 오래되서, 전방 충돌 방지 보조하는 센서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새로 나온 그랜져 르블랑 트림이 좋다고 해서 한참을 알아보던 터였다.

내 눈에는 막 예쁘진 않았고, 실내를 예쁘게 하면 때가 탈 것 같았고 뭐 그랬다

유튜버들이 만든 영상들은 어찌나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런 설명들 틈에서 차 영상을 보다가 문득 정말 문득 아내가 물었다.

"남자가 차에 관심이 왜케 없어? 여보는 좋아하는 차는 있어?"

"볼보"


아뿔싸.

막았어야 했다. 

출신도 모를 이 질문의 답을 

아무 생각도 없이 다른 차들을 보던 내게

그 질문의 답은 파급이 컸다. 


이번에도 아내는 충격을 먹었다.

그랜져는 4천만원 대였고 볼보는 7천만원 대였다.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3천, 

이래저래 저축한 걸 깬다면 모으는 최대가 7천만원이었다.

마이너스인 주식도 깨야 했다. 


현실도 망각하고 외제차라니.

나는 도대체 왜 볼보를 좋아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어디서부터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날 이후로 아내는 나를 비싼 차나 쫓는 사치남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 역시 나를 그런 사람일거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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