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오징어 게임을 시작하지
대행사에 다니는 아내는 가끔 화를 낼 때가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다 된 얘기를 바꾸는 거야?"
"왜 담당자는 연락이 안되는 거야? 본인만 휴가야?"
나는 아내랑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상황 속에서 견디지 못하는 건 그냥 성격 탓이겠지.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어느새 그 담당자 편을 들다 보면
돌아오는 건 또 다른 화다.
"너 그렇게 일하지 마"
억울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아내랑 일하는 인하우스 담당자가 아니다.
대행사에 다닌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닐 텐데,
왜 인하우스에 다니는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냐고 항변하고 싶지만
더 큰 화를 굳이 부를 필요는 없으니 생략한다.
아내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한 번은 회사 동료들과
"대행사에서 보면 우린 진짜 나쁜 사람들이겠지?"라고
신세한탄을 한 적들이 있다.
"어쩔 수 없죠."
"와보라고 해"
등의 말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건 우리다.
이런 위로를 서로 건넨다는 건
어느 을에게 나는 갑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겠지.
뭔가 나빠 보이는 것 위주로 써서 그렇지,
대행사와 미팅을 하고 나면 속이 뻥 뚫린 것 같이 시원해질 때도 많다.
딱딱하고 고만고만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부 미팅과 달리
신선한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시작하는 회의들이 업무에 열정을 더하기도 하다.
티키타카가 잘 맞고 믿음을 나누는 순간들이 즐겁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 회사의 일개 직원으로서
무언가를 관리하고 의심하고 재촉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매번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고 냉정 해지는 일도
우리의 업무의 하나다.
그리고 그 업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를 설득하거나 이상한 미팅에도 들어가야 하고
한없이 보고를 기다리기도 한다.
심기를 살피기도 하고 인사조직의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그 역시 업무의 하나다.
이런 업무들도 하다 보니 혹시라도 어느 을에게
"그렇게 일하지 마"에 해당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 때문은 아니고 그랬다면 미안합니다.
#직장인의 경험을 동반한 상상의 글입니다.
#갑은 광고주, 을은 대행사로 한정 지어 말한 것이니 확대해서 생각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