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오징어 게임을 시작하지
왜 아이디어가 엎어지는지 궁금할 때가 있을 거다.
이미 아는 분들은 패스하고 모르는 분들은 한 번 들어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먼저 대행사에서 아이디어가 온다.
아 아이디어는 우리가 낸 RFP(제안 요청서)에 의한 것이다.
내용을 충실히 담지 않았다면 문제다.
그리고 충실히 담았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이디어가 오는 사이에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왤까?
아이디어를 요청하는 부서와 그걸 적용하는 부서가 다를 수 있다.
전체 프로젝트가 긴급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행사에서도 고민을 함께 해줘서 아이디어를 얹기를 원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딱딱 원하는 타이밍에 들어맞지 않으니까
그래서 몇 번의 수정을 더한다.
대행사는 당연히 한 번에 넘어갈 리 없었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더 많은 아이디어와 더 많은 레퍼런스를 준다. 이 중에 골라봐라는 뉘앙스도 담겨있다. 그런데 그것도 역시 멈춰질 때가 많다.
왤까?
"이 많은 것들 중에 대행사는 뭐가 좋다는 거죠?"
"아이디어가 방향성이 명확지 않네요."
"전 이게 좋고 쟤는 이게 좋데요."(그래서 도대체 뭐?)
"a안이랑 c안이랑 섞으면 딱일 것 같은데..."(난 이게 제일 싫다)
그럼 다시 몇 번의 수정을 거친다. 합치기도 하고 자르기도 하고 난도질이 된다. 처음 제안을 줄 때는 방향성도 명확하고 아이디어 내는 과정도 논리가 있었지만, 다양한 과정들을 거치고 나서 나온 아이디어가 엎어지기도 한다.
왤까?
"계속 보던 아이디어 같은데"
"이거 우리 제품 말고 다른 거 얹어놔도 똑같은 거 아니에요?"
"왜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죠? 대행사는 아이디어 없데요?"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을 설득하고 무마하고 설명하고 잘못 생각하는 걸 고치는 일을 해서 월급을 받는다는 사명감으로 안을 추리고 추린다. 그렇지만 이 안이 올라가다 좌초되는 일도 있다.
왤까?
"누가 이거 대행사에 돈 주고 시키랬어?"
"난 이 방향을 말한 게 아닌데?"
...
다시 원점인 것 같지만, 대행사는 지쳤고 시일은 다가온다. 촬영이라고 잡히면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모델이나 촬영 장소 제품 출시 일정들을 따져봐야 한다. 그래 놓고 결과물은 '처음 얘기했던 목표'에 내놔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썩을...)
그렇지만 그 모든 걸 함께 해주신다.
결과물이 나오면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결과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대행사 분들이다.
답답한 과정 속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동안
누군가는 피폐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양쪽의 상황을 같은 비중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고 읍소하는 일이다.
나 역시 결과물은 제 때 나와야 한다는 입장에 가장 가까운 사람일 테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일부의 경험일 뿐이다.
모든 광고주는 절대 이렇게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은 대행사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히 제안을 달라고 요청할 땐 갑이었는데
이쪽과 저쪽의 요청사항을 쳐내야 하는 을이라서 죄송하고 미안했다가
고생했고 수고했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 갑이 된다.(계산서를 처리한다는 이유겠지.)
단언컨대 업무량, 기여도, 고민의 양으로 갑을을 따진다고 한다면
분명 갑을 구분은 없을 것이다.
#직장인의 경험을 동반한 상상의 글입니다.
#갑은 광고주, 을은 대행사로 한정 지어 말한 것이니 확대해서 생각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