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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모 Mar 26. 2018

다른 듯 닮은 법랑컵

법랑이라고 아시나요? 금속 표면에 유약을 발라 입히는 형태를 말하는데 사진에 있는 컵이 그렇게 만들어진 컵이라고 합니다.

청랑한 물을 담아 마시면 그 맛이 배가 되는 이 컵은,  항시 우리 부부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주는 친구가 태국에서부터 가져온 선물인데요. 사실 저는 이 컵의 이름도 몰랐어요. 부인이 말해주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친구는 선물과 함께 이런 말을 건냈어요.


“너희 부부 맞춤이야. 너가 작은 컵이야.”


당시의 저는 에스프레소에 막 맛을 들였을 때라 절 위해 작은 컵을 골라준거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컵을 볼 때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먹는 상상을 하게 되었거든요. 별것도 아닌 컵 하나에 생각을 하고 생활이 묻어난다는 건 참 소소하게 행복한 일입니다.


컵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한가지 기억이 떠오르네요. 신혼 초 설거지로 컵을 깼는데 들킬까봐 제가 엄청 걱정을 했어요. 하나하나 세심하게 골랐을 부인의 타박이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모델을 알아서 주문을 했더랍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싸구려 컵인데 뭐하러 하나 더 샀냐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가격이 싼 컵이었거든요. 막상 구매 버튼을 누를 땐 그 생각을 전혀 못했어요. 하나하나 골랐을 부인 생각만 났죠.


집에는 다양한 종류의 컵이 있습니다. 각자 용도가 다르다는 그 컵에 저는 물도 마시고 음료수도 마셔요. 구분하는 컵이라곤 와인잔 정도?! 가끔 다른 컵을 사려고 두리번거리는 부인한테 “또 사?” 라고 말했다가 혼나기 일쑤입니다. 용도가 다르다나? 전 이해를 못하는거죠.


컵이 뭐 컵이지 했는데 법랑 컵 한쌍을 보고 있으면 왠지 용도에 맞게 쓰고 싶어집니다.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부라고 같이 살다보니 묘하게 따라하게 되었다랄까요.


저와 울 부인은 묘하게 닮았습니다. 둘의 온도도 색도 크기도 다른데 묘하게 닮아서 함께해요. 집에 있는 수많은 컵들 가운데에서도 같이 써야 하는 애들이 있듯이(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 우리도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그걸 취향이라고 하는데 울 부인은 그걸 상식이라고 불러요. 결혼생활은 학교의 연장선인게 분명합니다. 많이 배우게 되거든요.


컵에 뭘 담아마실 줄만 알았는데 어느샌가부터 컵 밑면을 살펴보기도 하고 두께나 용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전히 사용하는 컵만 사용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결혼 초기에 비하면 스스로도 많이 바뀌었어요. 다른 듯 닮은 법랑 컵처럼 오늘도 그렇게 사는 중입니다. 선물한 사람 센스가 다시 한 번 돋보이네요.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부부가

일기처럼 적는 부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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