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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Aug 21. 2019

<기생충> 가난의 냄새

오물

오물에 꽤 강한 편이다. 성장환경 때문일 것이다. 성장과정에서 위생이 좋은 공간에서 지내본 적이 별로 없다. 대학에 갈 때까지는 내 방도 없었다. 20대가 되어서도 빌라 차고 뒷방에서 자취를 했고 학생회실에서 1년 정도 지냈다. 비위는 점점 강해졌다. 오물에 강하면 좋을 때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 치울 때, 변기 청소할 때, 벌레 잡을 때 등등.


냄새

동시에 냄새에 예민하다. 냄새에 예민하다는 뜻은 싫은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뜻이 아니고 말 그대로 후각 전반이 예민하단 뜻이다. 어릴 적에 연탄가스가 샌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엄청 크게 울며 깨는 바람에 사고가 커지지 않았다. 담배냄새에도 아주 예민해서 담배핀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오기만 해도 괴로워한다. 1층에서 담배핀 연기가 4층까지 밀고 올라와 여름에 창문도 잘 안 열고 잘 정도였다.


태도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떤 태도를 만들어내는데 이건 그야말로 일관된 기준없이 상황과 경험들이 빚어낸 대처법의 총합이다. 가령 상대가 방구를 끼거나 트림을 하거나 생리현상에 대해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실행(?)에 옮겨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거나 할 때 온갖 체액들이 새거나 묻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먹는 것과 싸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어차피 몸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니 누구 것이 더 불쾌하네 마네 뭐 이런 생각도 잘 안한다. 문제는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상대방의 태도를 확인하지 않고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은 엄청난 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침뱉지 않기, 상대방 앞에서 트림하지 않기(이건 상대에 따라 다르다), 살이 보이도록 긁지 않기 등등 온갖 훈련으로 고쳐진 습관들이 엄청 많다.


위계

그러고 나니 어쩔 때는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상대방에게 매우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는데 대체로는 상대의 행동 패턴이 위계에서 나오는 무신경함일 때가 특히 그렇다. 가령 상대가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더라도 남자, 특히 아저씨가 그러면 더 화가 많이 난다. 왜냐하면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해 훨씬 덜 신경쓰고 살아도 되는 환경이 체화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역으로 냄새가 엄청난 위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의 냄새에 대해 생각할 때 늘 조심스럽긴 하다. 잘 씻고 오지 않는 학생 한 명 때문에 교실 전체가 불편한 경우가 있었다. 그 학생에게 냄새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못했다. 모두가 불편해하는 게 티가 나는데 당사자만 모른다. 그럴 때 나는 내 어릴 적을 생각한다. 만약 경제적 환경 때문이라고 상상하면 말하기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이 고유한 품격을 갖는 방법에 대해.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확실한 건 그런 학생은 거의 대부분 남자다. 위계는 복잡하게 작동한다.


강자에게 더 강하게 대한다는 원칙은 대체로 미시적인 영역에서도 일관되게 작동한다. 그러고 나니 예전에 내가 이 정도면 뭐 어때라고 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계속 다시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에서건 고유한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가 만들어 줄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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