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요구가 높지 않다. 하지만 공정에 대한 요구는 엄청나게 크다. 이는 피해의식과 관련이 깊다. 나만 손해볼 수 없다는 피해의식, 너도 죽을 만큼 고생해라 그래야 인정해준다는 피해의식. 이 피해의식이 좁은 땅덩어리와 엄청나게 발달한 인터넷 등 매체 환경과 관계망을 통해 퍼져 나가 삽시간에 여론을 형성한다. 그래서 공공성의 최소주의를 선호하면서도, 해외에서 이해 못하는 엄청난 상황, 즉 외부에서 볼 때는 공공성이 극대화 되어 사회를 살리는 듯한 환각이 일어나는 거다.
해외 반응을 보면 코로나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엄청난 대응 속도에 놀란다. 공공성=사회주의 확대=공산화라는 이상한 등식이 적용되면서도 희한하게 공적자원(마스크에서부터 방역, 동선자 추적, 확진자 의료서비스까지)이 엄청난 속도로 분배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건강한 시스템에 기인한 게 아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여론의 작용과 정권을 잡은 지도자/정치세력의 임기응변에 의해 굴러가는 럭비공같은 형국 속에서 사람들 갈아 넣어 이뤄낸 것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면, 다음에는 운이 나쁠 수 있다.
p.s 공공성과 연대의식은 낮은데 피해의식에 기인한 공정(시험의 공정), 평등(고통의 평등) 관념은 높다. 그래서 존경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대체복무제가 포함된 여성징병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했을 때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너도 고생해봐라 이 논리를 넘어설 수 없다. 모병제는 군대의 계급화란 측면에서 입장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