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마음에 그제도, 어제도 걷고 또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봤다. 엔딩송이 흘러나온다. 찬실이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고, 사랑도 가고, 청춘도 갔는데 오직 많은 건 복뿐이란다.
감독 김초희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에 일만 하고 살던 여자 이야기인데, 실직을 계기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40대 싱글족 여성의 성장담 같은 영화'라고 인터뷰한다.
20여 년 전 IMF가 왔을 때 엄청나게 자주 데모에 나갔다. 그리고 코로나로 IMF 때 못지않은 경제적 한파가 몰아친다는 예측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요즘 생판 처음 3개월째 쉬다 보니 20여 년 전에 느끼지 못했던,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공포가 무엇인지 조금은 구체적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복권을 사줬다. 생전 처음 손에 쥐어보는 복권이다. 찬실이가 가진 그 많은 복을 이 복권에 담아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