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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Mar 25. 2020

n번방과 일반화

수를 나열하면 수열이라고 한다. 여기 가장 간단한 수열을 예로 들어보자.


2, 4, 6, 8, 10, ....


이 수열의 일반항은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첫 번째 항은 2

두 번째 항은 4

세 번째 항은 6

....

n번째 항은 2n


수학에서 보통 n번째라 함은 정말 순서대로 n번째(알파벳순으로 14번째)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일반화시켜 표현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n을 사용한다. 왜 주로 n을 사용하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아마도 수열이 자연수(Natural number)에서 정의된 함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n번방이란 표현을 처음 보자마자 어떤 싸한 느낌이 왔다. 방은 처음 생겼을 때 1번 방, 그다음은 2번 방, 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많은 방이 생겨나자 일반화시켜 'n번방'이라 불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방을 만들고 이용한 이들 역시 특별한 악마가 아닌 'n번째 남자'였을 것이다.


일반화의 화법이 쓰인다는 것은 이 구조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술자리에서 성희롱을 묵과하고, 숱한 성폭력에도 쉬쉬하고, 계속되는 사이버 성착취/성폭력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었다. 가해자는 희희낙락 웃고 피해자를 협박하고, 피해자는 세상을 등지고 때론 삶을 포기했다. 이 수많은 폭력이 하나의 교훈을 낳는다.


'그래도 괜찮다.'


그 결과 'n번방' 사건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 날 툭 터진 게 아니다. 어떤 악마 때문에 툭 터진 게 아니다. 켜켜이 쌓인 역사가 구조가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성착취 관련 산업은 이미 판데믹 상태다. 그러니 남성 일반을 매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전혀 본질이 아니다. 일벌백계도 좋고, 신상공개도 좋은데 구조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정치가 나서서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성희롱, 성차별, 성폭력, 성착취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상을 바꾸자. 'n개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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