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 20일에 책을 냈다. 무려 3년 반을 쓰고 책을 냈더니 밀린 숙제를 한 것 마냥 홀가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아쉬운 부분들이 보였다. 그때는 책을 더 쓰게 될 줄 몰랐다. 어쩌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책, 더 잘 쓸 걸, 더 열심히 쓸 걸, 책을 다시 펼쳐볼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때는 책을 또 쓰게 될 줄 몰랐으니까. 사람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 일찍 죽는다, 는 게 내 인생관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 최선이었다. 나의 최선. 그렇게 책을 꾸역꾸역 썼다.
구매는 필수, 독서는 선택
지인 찬스를 엄청나게 썼다. 제목에 수학이란 단어만 들어간다고 해도 다들 경기를 일으켰다.
으아 수학책 싫어~~
야 사놓기만 하고 안 읽어도 돼. 표지가 민트+핑크 조합이라 꽂아두면 이뻐.
착한 친구들이 책을 엄청 사줬다. 어떤 친구는 막 열 권씩 사서 뿌려주기도 했다. 덕분에 한 두 달간 순위가 팡팡 올랐다. 가장 높이 올라간 게 알라딘에서 과학 주간 8위까지 올라갔다. 두 달간 나는 칼 세이건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작가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평생 하고 싶은 거 하나 이뤘다고 좋아했다. 책을 내는 일은 노력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벤트 같은 거였다. 이왕 하는 이벤트 더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한 번은 친구들 불러서 조촐하게, 한 번은 유명인사 불러서 성대하게.
10쇄를 기원한다고 농담처럼 떠들고 다녔는데 기도가 조금 통한 걸까? 이왕 책 낸 김에 많이 팔리면 좋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2쇄, 3쇄, 4쇄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신기했다.
책을 내고 보니 알았다. 책으로는 돈을 못 번다. 슬프게도 그래서 돈 버는 사람들만 계속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도서정가제를 응원한다, 동네책방을 응원한다)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전업작가는 전체 3%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그 정도로 책으로 돈 버는 일은 어렵다.
지인 찬스가 끝나가자 순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일 일과처럼 일어나자마자 알라딘이나 예스24 어플을 열어 순위를 확인하던 습관이 점점 뜸해졌다.
책을 내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냉정하게 학원강사로 버는 수입과 비교를 해보면 책을 내서 버는 돈은 부수입으로 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그래도 수학강사가 수학책을 냈으니 뭐 포트폴리오에 괜찮은 이력 한 줄이라도 추가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학원 말고) 어디서 교양강좌라도 열어주면 고맙지, 그런 환상을 가졌다. 그런데 코로가까지 겹치면서 환상은 환상으로 끝났다.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다양하고, 그런 쪽으로는 언제나 목마른 사람이다, 나는. 목이 말라서 책을 썼다. 근데 막 말라죽을 정도로 목이 마르지는 않았다. 매사에 너무 열심히 살면, 금방 죽는다, 는 인생관을 다시 떠올릴 때쯤 신기하게 순위가 다시 올랐다.
올여름, 판매량이 다시 올라 잠시 역주행을 했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학생들 독서토론용 교재로 써먹는가 보다. 기어이 5쇄를 찍게 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쯤 신기하게도 책을 내자는 연락이 몇 군데서 왔다. 어쩌다 동시에 2, 3번째 책을 쓰는 처지고 되고 보니, 나는 좀 더 제대로 작가의 마인드를 갖춰보기로 한다. ebook리더기를 사서 밑줄 그어 가며 미친 듯이 책을 읽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수학, 과학 교과서를 모두 사들이고 교과과정을 외운다. 15세기 대항해시대, 15~16세기 르네상스, 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 자유주의/민족주의...세계사 시간에 대충대충 배웠던 내용을 꼼꼼하게 다시 공부한다. 알베르티 [회화론], 라플라스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 알하젠 [시각론] 등 고전을 직접 사서 읽는다.
여전히 책을 내는 일은, 부수입도 되지 못하는 그저 자아실현이다. 어쩌다 운이 좋아 코로나가 끝나고 불러주는 데라도 있으면 부수입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 강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을 때, 투잡 쓰리잡으로 온갖 능력을 쥐어짜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날이 왔을 때, 어쩌면 작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 손 내밀 말이 내게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
그래서 또 겨우 쥐어짜서 책을 쓰고 있다. 너무 열심히 하면, 금방 죽으니까 그러지 않을 정도로만.
코로나 때문에 이유도 없이 가슴이 갑갑해져 올 때, 읽고 쓰는 일로 버틴다.
책을 내고, 벌써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