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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Nov 07. 2020

거짓말인 줄 다 알면서

15년째 입시학원 강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특강이다. 수리논술을 가르친다. 수리논술? 그런 게 있어요? 네, 있습니다. 논술이라고 쓰고 대학별 고사라고 읽는 논술이란 게. 지금은 논술전형으로 뽑는 학생이 많이 줄었고, 학생수는 꾸준히 감소 추세라 시장도 많이 줄었지만 어쨌거나 15년째 수리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수시 전형 가운데 하나인 수리논술은 수능 전에 보는 학교가 일부 있고, 대부분은 수능 직후에 시험을 본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수능 일정이 연기되면서 수리논술 시험 일정도 함께 밀렸다. 그리고, 시험을 목전에 둔 학생들을 타깃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특강이다. 


요즘은 입시학원도 플랫폼 형태로 바뀌었다. 강사는 자기 콘텐츠를 가지고 이 학원, 저 학원에 수업을 깐다. 

수업 내용과 형식은 거의 동일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수입은 수업마다 천차만별이다. 학원은 반응이 좋은 강사에게 더 좋은 시간대와 강의실을 배정한다. 그렇게 시장 반응에 따라 강사는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평가받는다. 


내 학원이란 개념 자체가 딱히 없기 때문에, 대부분 교무실은 간이 휴게실처럼 바뀌었다. 수업시간 전후로 교무실에 짐을 두고, 교재를 복사하고, 삼각김밥을 먹는 정도. 대화는 거의 없다. 스치듯 만나는 강사들과는 어쩌다 목례 정도 주고 받는 게 다다. 


추석특강 때는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쉴 새 없이 수업이다. 보통 3시간 30분에서 4시간짜리 수업을 4개 정도 한다. 학원 간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예전에는 이동 중에 택시에서 끼니를 때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라 그마저도 어렵다. 

첫날은 그냥 굶었다. 

아무리 3~4일만 하는 특강이라지만 첫날은 항상 긴장된다.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바로 수강을 취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미리 가서 여러 상황에 대비한다.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 반. 첫 식사를 한다. 후루룩 먹고 내일 수업 준비를 하고 잠들면 2시쯤? 몇 시간 자고 아침 일찍 다시 일어나야 한다. 6시 반이면 충분하려나? 아니지, 추석 연휴라 차가 밀리지 않으니 맘 편히 택시를 타고 가면 되겠지. 30분을 벌었다. 7시에 일어나자. 


어제 왔던 학생들이 그대로 출석했다. 조금 안심. 마음이 놓이니 이틀째는 그래도 밥을 먹기로 한다. 중간중간 알아서 편의점 김밥에, 샌드위치에, 커피에...학원강사 15년 동안 샌드위치를 얼마나 먹었을까? 해피포인트로 케이크를 두 번 공짜로 받았다. 해피포인트는 적립도 많이 해주니까. 밥 먹을 시간이 남아도 추석 연휴라 문을 여는 식당이 거의 없다. 샌드위치는 지겹고 밥, 밥이 필요하다. 2400원짜리 편의점 김밥을 사 먹었는데 맛이 제법 좋다. 2400원짜리로 이맛을 내기 위해 세상은 어떤 마법을 부린 걸까? 어떤 사람의 노동력을 갈아 넣은 걸까? 재료는 뭘 쓴 걸까? 언제가부터 가성비가 너무 좋다는, 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지. 


김밥 포장지에는 완도김과 밥맛 좋은 신동진 햅쌀을 사용했다고 나온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런데 그 좋은 재료를 쓰고 2400원짜리는 어떻게 가능할까? 김밥 포장지에 적힌 문구가 거짓은 아닐지 몰라도, 거기엔 어떤 말들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얼른 김밥을 먹고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2400원짜리 김밥은 내 생활습관 속으로 들어올 것인가. 익숙한 맛, 가성비 갑이라는 만족감, 하지만 미묘한 거부감. 구체적인 습관 하나하나 세상에 생략된 말들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조금 깊이 생활 속으로 들어올 것인가, 기운을 내서 열심히 밀어낼 것인가. 편의점 김밥에서 시작된 고민이 완도를 지나,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신동진을 지나 끝없이 뻗어나가려 하자. 생각을 중단한다. 일단 추석 연휴는 지나고 생각해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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