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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Nov 21. 2020

11월에 폭우가 쏟아졌다

봄에 내리는 눈, 4월


일찍 시작되는 여름, 6월


시원한 여름, 7월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비, 7~8월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가을과 겨울 사이, 11월


기상 관측은 언제 시작되었나

날씨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기상관측 이래'라는  자주 듣는다. 2020년은 기상관측 이래, '기상관측 이래'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해가 아닐까? 데이터 분석을 참고한 건 아니고 그냥 느낌이다.  


기상관측 시작 시점은 언제일까?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우선, 기상관측 방식은 국제 표준에 따른 근대식 기상관측으로, 기온과 기압, 풍향, 풍속 등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하며 연속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상청(정부)은 1904년에 일본이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시점을 우리나라 근대기상관측의 출발 시점으로 잡고 있다. 1904년 3월 25일 전남 목포에 처음으로 측후소가 설치됐다. 기상청은 이 날을 기념일로 잡는다.


1905년 11월 1일 예보 맑음. 현존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예보 기록이다. 국가기록원에는 이날의 <천기도>가 남아 있다. 천기도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일기도로서, 지도 위에 바람과 기압 배치 등이 표시돼 있다. (사진은 검색하면 나오지만 저작권 있을까 봐 긁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뉴스에는 1907년을 기상관측 시작 시점으로 잡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왜 1904년이 아니고, 1907년일까?


"사실 대한제국에서 관측을 시작한 것은 1907년이니까 그것을 기준으로 삼든지 외국인에 의한 일기 관측을 잡으려면 그전에 많이 있으니까 그것으로 잡든지 해야 되는데 오로지 일본의 주장대로 따라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


1907년, 경성측후소의 전신인 한성 측후지소가 설치되었다.


1904년 2월 8일 시작된 러일전쟁은 1905년 가을에 끝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배를 사실상 확정 지었다. 일본은 비서구 세력으로는 처음으로 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이 되었음을 공인받았다. (당연히 아시아의 승리라는 포장에 설레어하던 조선인도 있었다.)


일본은 1882년 기상관측을 시작했다. 1904년 일본이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목적에는 전쟁도 포함될 것이다. 러일전쟁은 해상에서도 격렬했다. 대한제국은, 아마도, 스스로 정상국가임을 내보이려고 뒤늦게 기상관측을 시작했을 수 있다.


11월에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는 물론, 듣기 좋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뉴스를 검색해보니 11월 19일은 기상관측 이래 서울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날이다.  창문을 통해 한 번 필터링된 빗소리를 좋아한다. 적당한 음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폭우에도 끄떡없는, 이 집이 나를 지켜주리라. 출근할 필요도 없으니 저 비를 맞지 않아도 된다. 이런 날은 프리랜서의 삶이 복되다. 관조의 대상이 될 때 기후위기조차 편안해진다.


그게 문제다. 관조의 대상이 된다는 것.

19~20세기가 혁명의 시대였다고 하지만, 이런 말도 이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현대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매일매일이 혁명이다. 혁명을 급격한 변화라는 수사로 확대 사용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말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기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제 이 말에도 무감해질 것이다. 이 빠른 속도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은 임기응변이란 감성을 키웠다. 우리는 임기응변이란 감각을 통해, 기후위기를 관조한다. 관조하다가 뭐 어쩌지 못할 정도로 위기가 코 앞에 닥치면 임기응변을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창문을 통해 필터링된 빗소리는, 편안함과 불안함 사이를 불편하게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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