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략은 얇고 넓게다. (그런 게 있다면) 고유한 감성은 두 스푼 정도 추가될 뿐이다.
처음에 책을 쓴 건 순전히 학원강사로서 삶이 지겨워서였다. 지겨움이란 뭘까? 반복이 되면 일단 지겨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일정한 반복 없이 숙달되는 무엇은 없다. 그래서 반복을 견디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그걸 보상이라 불러보자. 돈이건, 재미 건, 명예 건, 가족이건, 사회적 의미건 간에 각자 반복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다. 학원강사를 견디게 하는 힘은 의외로 재미였다.
수학이 재밌었다. 사람들이 만나서 워크숍 하는 게 재밌었다. 사부작사부작 학원이 자립하고 성장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일정한 성과를 내자 거기서 막혔다. 더 성장하려면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거지. 적당히 벌고, 적당히 착하게 살고, 적당히 다른데도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살고 싶었다. 참 순진하기도 하지. 지금 생각하면 그 적당히라는 걸 서울이란 도시에서 온전히 혼자 힘으로 이룬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
그즈음 책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고, 남들과 다른 생활 패턴 때문에 밤새 술먹거나 아니면 밤새 뭘 다운로드하여 보거 나인데. 가끔 그 가운데서 수학적 사고와 연결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갈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걸 붙잡아보려고 그냥 글을 쓰다가, 블로그에 올리다가, 미디어스에 연재를 하다가, 책이 되었고 지금은 그냥 나작가란 농담 같은 반응을 즐기고 있다.
세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요즘은 주로 하는 생각은 이걸로 부수입 정도가 가능한 모델이 나올 거냐 하는 것이다. 뭐 사람들이야 요새 통섭이 인기래, 유튜브나 해봐, 시민강좌 같은 걸 뛰어봐 이야기 하지만 그게 쉽나. 반복을 통한 단련 없이 거저 얻어지는 성취는 하나도 없다. 첫 번째 책도 그냥저냥 팔렸다지만 3년 쓰고 6천 부 팔았는데 남는 돈은
몇 달 월급 정도 수준이다. 이걸로는 못 먹고 산다.
그래도 재미가 있다. 덕분에 이것저것 잡스럽게 다시 읽고 있다. 그래서 그냥 이걸 특기로 삼아 몇 년 더 써보기로 한다. 얇고 넓게. 이를테면 브라운운동이 증권투자에 영향을 미쳤다는 문장을 본다. 조금 노력하면 브라운운동과 금융수학을 둘 다 적당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강사 스타일루다가 이걸 조금 쉽게 각색하고 아주 쉬운 예를 들어주는 거다. 수학 교양서적을 읽다 보면 이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글쓴이들이 다들 어디 박사고 교수여서 사람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마음을 모른다. 무슨 관용어구처럼 쉽게 설명했다고들 하는데 들어보면 뒷목 잡기 좋다.
석사, 박사가 수두룩하고 특정 분야만 평생 고민해도 아무 성취를 이루지 못한 사람이 차고 넘친다. 나는 그저 적당히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을 전공했고, 적당히 아는 지식으로 먹고살다가 책을 쓰게 되었는데 여기에 감성 두 스푼을 넣어서 부수입 정도 되는 수준으로 노력해볼 참이다. 최대한 얇고 넓게. 그나마 정직하게. (사짜는 되기 싫다. 수학의 마인드에 맞지 않는다.)
고정된 역할이 없다는 거. 스스로 선택한 삶의 결과인데 불안과 기대가 상존한다. 세상이 다 그러니까 누구 탓도 할 수 없고.(당연히 사회를 바꾸기 위한 1/n의 노력은 동료들과 함께 한다) 옛날에는 정거장 이런 말 들으면 되게 포근했는데 요즘은 플랫폼이란 말만 들어도 거처 없이 점찍고 가는구나 싶은 씁쓸+쓸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학원도 다 플랫폼화 되어 버렸다. 교무실은 수업 전 잠시 대기하는 강사 휴게실이 되었고 소속이랄 것도 없는 강사들이 앉아서 편의점 김밥이나 스타벅스 커피 때리는 곳이 되었다. 다 각자 콘텐츠로 수업 깔고 반응 좋으면 성장하고 반응 없으면 알아서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 와중에 찾은 재미가 읽고 쓰는 일이라는 게 감사하다. 이왕이면 이게 사회적 의미까지 획득하면 좋겠지만 잘 모르겠다. 내년에는 주변 사람들 상대로 세미나나 한 번 해봐야겠다. 내가 잘하는 걸로.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 가지고. 누가 "야 인마 데이터 과학이 어쩌고, 인공지능이 어쩌고, 이게 다 수학이라는데 뭔 소리야?" 이러면 이것저것 잡스럽게 읽은 다음 내 나름대로 소화해서 간단한 예를 들어 설명해주는 거다. 그러고 거마비라도 받고, 반응이 좋으면 또 책 소재로 쓰는 거다. 학원강사가 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워크숍 이런 것도 가능하려나??
아무튼, 이런 생각하면서 지낸다.
올해 고민 정리 1. 생각나면 2도 쓰고.